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김재영의 남성학] 기생학교

개화기 대중문화 선도 인물도 배출

평양의 명소 연광정에서 대동강을 끼고 부벽루에 오르다 보면 한-양옥 절충의 우람한 조선집이 있었다. 아름드리 기둥에는 주홍칠을 하고 벽마다 그림을 그려놓은 이 집이 팔도에 유일했던 평양 기생학교다. 학교건물에 들어가면 속칭 기생냄새에 발을 멈추게 된다. 바로 머릿기름인 동백기름 냄새 때문이다. 맨 위층은 무용교실이 있어 기생 후보생들이 승무를 비롯해 서양 사교춤도 배웠으며 아래층에서는 ‘반 남아 늙었으니/다시 젊진 못하리라’ 하는 수심가를 배웠다. 선비에게는 사도가 있고 무사들에게는 무사도가 있듯이 기생에게는 기도가 있었으며 그 기생의 윤리교육을 일패도라 했는데 기생교육의 으뜸 덕목이었다. 삼한시대부터 존재했던 기생은 이처럼 체계적인 수련을 거쳐 배출되었는데 갑오경장으로 궁중이 혁파되면서 대거 퇴출 된 궁녀들이 기생으로 편입되면서 절정기를 누렸다. 기생은 출신신분이나 지조나 예능의 수준에 따라 일패, 이패, 삼패로 가름했는데 삼패기생은 속칭 더벅머리라 하여 몸을 파는 창녀를 뜻하며 가무서화를 못하고 겨우 잡가 정도 부르고서 호객을 했다. 이패는 삼패보다는 품위를 지키는 기생으로 은군자로 속칭 되었다. 일패 기생처럼 몸을 팔지 않는 척하며 기회가 무르익으면 은근히 정을 주고 몸도 판다 해서 은군자였다. 일패는 궁가나 관가의 잔치에 가무를 피로하는 기생으로 몸을 팔지도 않으며 요구해서도 안 되는 기생이다. 한국기생사랄 수 있는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에 보면 평양기생학교처럼 동녀를 어릴 때부터 데려다 글과 노래 춤을 가르치고 행실을 가르쳐 낸 기생을 일패라 했다. 일패에 오르면 나라에 큰 잔치가 있을 때마다 궁에 불려갔으며 나이 30이 넘으면 그 동안 모은 돈으로 주막을 열었고 이들을 코머리라고 불렀다. 한편 기생은 이밖에도 큰 고을마다 ‘교방’을 두어 배출하기도 했는데 개화기 대중문화를 선도했던 인물 중에는 기생 출신들이 많았다. 그저 웃음을 파고 몸을 파는 오늘날의 호스티스들과는 격이 달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기생제도 역시 청산되어야 할 문화이고 잔재임은 분명하다. 다만 막가는 우리 음화를 되씹는 뜻에서 펼쳐 보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