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전격 합병 결의에 따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사실상 '굳히기'에 들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갖고 있던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직에 취임한 데 이어 이번 합병을 통해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실효 지배력을 강화해 명실상부한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했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26일 "지난 2013년 옛 삼성에버랜드의 제일모직 패션사업 부문 인수를 신호탄으로 시작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재편작업이 이번 합병을 계기로 방점을 찍은 느낌"이라며 "JY만의 색채가 삼성의 경영에 본격적으로 입혀지는 발판이 만들어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합병회사의 사명을 형식상 인수 주체가 되는 제일모직이 아닌 삼성물산으로 결정한 것도 호암 이병철 창업주로부터 이어온 삼성의 기업 이념을 이 부회장에게 물려준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물산은 1938년 호암이 '삼성상회'라는 간판을 걸고 설립한 그룹의 모태다.
이번 합병은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그동안 끊임없이 가능성이 제기돼온 방안이었다. 이 부회장은 그룹 지주사격인 제일모직의 지분 23.23%를 가진 최대주주이지만 삼성전자의 지분은 거의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갖고 있어 양사 합병에 따라 자연히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한 다리 건너' 강화되는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물론 양사 합병에 따라 이 부회장이 제일모직 지분은 합병 전 23.2%에서 합병 이후(삼성물산+제일모직 기준) 16.5%로 낮아지지만 실효 지배에는 문제가 없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 부회장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다는 게 포인트"라며 "앞으로 남은 과제는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남매의 계열사 분할과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을 보면 양대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이 부회장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작업이 이뤄져왔다.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확대는 이날 합병으로 방점을 찍었고 삼성생명의 경우 삼성생명공익재단 및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취임으로 분명한 그림을 그린 바 있다.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은 각각 삼성생명 지분 4.68%, 2.18%를 갖고 있어 이사장이 사실상 의사결정권을 쥐는 구조다. 또한 이 부회장은 이에 앞서 지난해 말 삼성생명 지분 0.06%(12만주)를 취득하기도 했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7.6%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력이 점차 공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합병에 따라 순환출자 고리가 좀 더 단순해진 것도 장점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삼성의 순환출자 구조는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전기·삼성SDI→제일모직'인데 앞으로는 크게 그렸을 때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거느리는 구조로 단순화된다.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강화를 강화하고자 할 경우 지분 11.2%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SDS를 삼성전자와 합병해 합병법인의 주식을 교환 받는 방안이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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