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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베이션 코리아 2014] 세대갈등 '공존의 길'은 있다 <7> 생활고 부추기는 의료비

고령화에 의료비 급증… 베이비부머 은퇴땐 '메디푸어' 속출 우려

수명과 함께 병도 늘어나

소득없는 65세이후 진료비 생애 전체의 3분의2 달해

미래세대 부담 폭증에도 젊은층 "당장 생계 급해"


"돈 있는 날은 파스 붙일 수 있어서 무릎이 덜 아프고 없는 날은 더 아프지. 그래도 나는 괜찮아. 빚 갚느라 혼자 일하러 다니는 우리 막내아들이 불쌍하지. 공장에서 일하는데 나이가 쉰을 넘으니 벌써 늙었다고 하네.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어."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 가리봉 시장 안쪽 골목에 있는 노인 회관. 김봉남(90·가명) 할머니는 아픈 몸을 이야기하다 말고 아들 생각에 눈물짓는다. 아들은 멀리 안양에서 일하고 있고 며느리와 사는 김 할머니는 매일 노인회관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무릎이 아파서 지팡이가 있어도 걷기가 힘들지만 가끔 용돈이 생기면 파스를 사다 붙이는 것이 전부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 이에 따라 노년층의 의료비 부담도 급속도로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에서 65세 이상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0년 17.5%에서 2013년 34.4%로 14년 만에 두 배 늘었다. 2004년 약 5조원대였던 노인 의료비는 10년 만인 2013년 16조4,500억원대로 세 배 뛰었다. 그러나 이런 속도로는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를 따라가지 못한다. 가장 기본적인 의료복지라고 할 수 있는 국민건강보험의 65세 이상 보장률은 70%에 그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2010년 기준 6.4%만이 수혜를 입고 있다.

그 결과 65세 이후 예상되는 의료비 9,517만원 중 약 43%인 4,080만원을 노인이 직접 부담한다. 이는 생애 전체 본인 부담 의료비의 64.1%다. 65세 이상이면 은퇴하고 10년 이상 지나 퇴직금도 다 써버릴 나이다. 별다른 소득이 없는 이 시점에 평생 드는 의료비의 3분의2가 몰리는 것이다.

게다가 노인 대부분은 완치되지 않는 만성질환에 기약 없이 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 조사를 보면 세 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지닌 노인이 전체의 88.6%다. 그러나 과거처럼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경우는 줄어들고 있다. 자식세대가 40~50대에 일찍 은퇴하고 부모세대가 80~90대까지 오래 살기 때문에 부양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이날 기자가 방문한 노인회관의 경우도 전체 15명의 노인 중 74세 할머니가 가장 젊은 축에 속해 점심을 차리고 있었다.

없는 돈에 자식 집에 얹혀사는 게 미안한 김 할머니는 콩을 까서 팔거나 나물을 뜯어 판다. 그러나 노인회관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김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자식이 있으니까 (기초생활수급자가) 안 된대. 약값이랑 병원비랑 너무 비싸." 약값으로 1,000원, 물리치료비로 2,500원만 내면 되는 다른 할머니와 달리 김 할머니는 혈압약값만 해도 부담이 된다.



완전한 빈곤층에 몰리는 경우 기초생활수급자 등으로 인정받아 그나마 의료급여를 지원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식이 적게나마 돈을 버는 김 할머니는 의료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올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보면 1인 가구 기준으로 한 달 수입이 60만3,403원 이하면 의료급여 등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아들딸, 며느리나 사위가 있고 이들의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를 넘으면 부양 의무자로 인정되기 때문에 부모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다.

증손녀까지 본 김 할머니는 걱정도 늘었다. "큰손자가 지지배 하나만 낳았는데 돈 든다고 더 못 낳는대. 그 증손녀가 이번에 시집가는데 부모 도움 안 받고 어린이집 교사 해서 번 돈으로 가네." 빠른 고령화와 저출산이 맞물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노인 의료 재정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빈곤한 젊은 세대가 빈곤 노인에 대한 의료비 지원까지 반대하는 사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인구의 17%를 차지하는 816만명의 베이비부머(43~51세)가 한꺼번에 노후를 맞이하는 약 15년 후에 노인 의료비로 인한 빈곤화가 몰아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국가의 대비는 단단하지 못하다. 노후를 위한 기초자산인 국민연금은 노인 의료비 재원으로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은 보험료를 한 해 넣어서 보험금을 한 해 빼쓰는 구조다. 그러나 노인 의료비는 수십 년의 시차를 두고 수요가 발생한다. 소득은 30대부터 늘기 시작해 60대 이후에 급격히 줄어들고 의료비는 60대 이후 갑자기 증가하기 때문이다. 한 해 모아 한 해 쓰는 구조가 아니라 20~30년씩 구분해 모아놓고 나눠쓰는 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하려면 50대 이하 세대가 노인 의료비를 남의 일로 생각하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노인과 중년은 물론 그 아래 세대까지 참여하는 노인 의료비 재원조달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2030년 국가 청사진을 논의한 '비전 2030'에 참여했던 한 노인복지 전문가는 "기초연금이나 75세 이상 노인 틀니 지원 등 최근 도입한 노인 복지 및 의료 정책이 당장은 돈이 많이 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노인이 사회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빈곤이나 범죄로 발생하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라며 "노인이라고 해서 집에서 부양만 받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사회·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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