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4대 보험에 대해 최소 40년 이상의 장기 재정 추계를 통합 추진하려는 것은 미래에 불어닥칠 재정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미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연금ㆍ의료 등 고령화 관련 분야를 중심으로 정부 차원의 장기 재정 전망을 실시해 발표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도 이를 벤치마킹해 미래 재정 설계를 튼튼히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영향이 큰 연금ㆍ의료 등 분야 중에서 장기 재정 추계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곳은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유일하다. 연금공단은 국민연금법에 따라 지난 2003년부터 5년마다 70년 이상의 장기 재정 계산을 실시해 공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면 사실상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인 장기 재정 추계를 하는 분야는 없다. 있더라도 법적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공개수준이 미흡하거나 추계방식이 들쭉날쭉해 공신력 있는 전망이라고 보기 힘들다.
건강보험의 경우 앞으로 급속한 노령인구의 증가에 따라 국민연금과 더불어 재정 지출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중장기 재정 추계는 건강보험공단이 실시하는 30년 단위의 '건강보험 중장기 재정전망 연구'가 전부다. 공단 측의 2010년 추계에 따르면 보험료와 수가를 인상하지 않고 신규 보장성 확대를 추진하지 않는 경우에도 오는 2030년까지 지출 증가율(연평균6.8%)이 수입 증가율(연평균 4.3%)을 지속적으로 초과해 당기 적자가 48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11년) 연구결과에 따르면 공공 재원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강보험의 급여지출은 지난해 36조999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1%를 차지했다. 그 이후 2020년에는 85조9,080억원(4.0%), 2030년 181조3,690억원(5.3%), 2040년 311조3,330억원(6.3%), 2050년 511조3,270억원(7.6%) 등으로 건강보험 급여지출은 장기적으로 국가 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국고 지원까지 더해지면 부담 금액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고용보험 급여지출도 2015년 12조8,139억원에서 2050년 18조6,346억원으로 45.4%, 산재보험 급여지출은 같은 기간 5조188억원에서 14조5,008억원으로 189%나 급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큰 규모의 재정 지출이 예상되는 4대 보험의 장기 재정 소요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겠다는 것은 미래 재정 설계 측면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는 평가다. 정부차원의 장기 재정 추계가 제대로 정착되면 앞으로 인구구조 변화가 장기 재정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ㆍ스웨덴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복지 분야의 개혁이 지연되면서 경제ㆍ재정위기를 경험한 사례를 감안해 필요하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금ㆍ의료 분야에 대한 재정 개혁을 착수할 수도 있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내년 7월을 목표로 각 기관 및 부처에서 실시하고 있는 분야별 재정 계산의 상이한 전망과 시기 등을 일치시키고 정부차원의 종합적인 장기 재정 전망을 정기적으로 실시해 공표할 계획"이라며 "추계의 범위를 4대 보험으로 확대하는 것은 향후 복지지출 증가 등으로 인한 재정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확보해나가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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