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상선의 유상증자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현대건설과 KCC 등 다른 범현대가도 현대상선의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 경영권을 놓고 벌어졌던 범현대가와 현대그룹 간의 분쟁도 다소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은 12일까지 진행되는 현대상선의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11일 밝혔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투자 수익률 등 경제적 판단을 한 결과 증자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며 "참여한다고 해서 지분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룹 차원에서 불참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지난 10월 운영자금 1,969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12일까지 1,100만주에 달하는 유상증자를 실시하기로 하고 이중 80%인 880만주를 기존 주주에게 배정하기로 했다. 이중 현대중공업에 배정될 신주는 약 208만주 규모였다.
시장에서는 현대상선 지분의 23.7%를 보유하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을 포함한 범현대가에서 유상증자에 참여할 경우 현대상선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의 불씨가 다시 점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그룹의 불참 선언으로 그 가능성은 크지 않게 됐다.
시장에서는 현대중공업의 현대상선 참여 포기가 현대건설(7.7%)과 KCC(2.6%), 현대산업개발(1.4%) 등 다른 범현대가 기업들의 불참으로 연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현대건설의 한 관계자는 "아직 결정될 것은 없다"면서도 "현대중공업이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도 있고…"라며 말끝을 흐려 불참 가능성을 시사했다.
만약 현대중공업을 포함한 범현대가 전체가 현대상선의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그동안 현대상선 경영권을 둘러싸고 벌여왔던 현대그룹과 범현대가의 갈등은 일단 소강국면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현대상선의 유상증자에서 실권이 발생할 경우 현대그룹 측에서 일반 공모나 증권사 인수 물량의 재인수 등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범현대가가 유상증자에 모두 불참할 경우 현대상선에 대한 지분율은 현재 35.4%에서 32.9%로 낮아지지만 그 물량을 현대엘리베이터와 우호세력들이 전량 인수할 경우 현재 44.4%인 지분율이 약 46.9%로 높아지게 된다. 이 경우 양 세력 간 지분 격차는 9%포인트에서 14%포인트로 벌어진다. 지분 격차가 벌어진 만큼 경영권 분쟁 가능성도 그만큼 낮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범현대가가 모두 증자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현대그룹 측에서 어떤 형태로든 일반 공모에 참여해 실권주를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며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지분율이 올라가는 만큼 당분간 경영권 관련 이슈는 잠잠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현대상선의 경영권 분쟁이 완전히 끝났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번 유상증자 물량이 많지 않았던데다 현대중공업이 각종 이슈 때문에 일단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지분을 처분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이번에는 업황 부진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 등 현안에 걸려 현대상선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며 "하지만 현재상선의 지분을 20% 넘게 보유하고 있는 한 경영권 분쟁의 불씨는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날 현대상선 주가는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분석에 전날보다 0.44% 떨어진 반면 현대중공업과 현대건설은 3% 이상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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