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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스포츠 중계, 입의 전쟁

'비난 해설의 거성' 이순철 급부상<BR>'샤우팅' 한준희 '정통파' 이용수 등 월드컵·올림픽 등 시청률 좌지우지

하일성 이순철

송재익(왼쪽) 신문선

이용수(왼쪽) 한준희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메르데카컵 축구대회가 열리고 있는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입니다…” TV라곤 읍내 전파상에서나 볼 수 있었던 60년대. 지금처럼 거실에 앉아 ‘우아하게’ 스포츠 중계를 보는 건 꿈도 못 꿨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중계방송에 온 동네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며 울고 웃던 그 시절, 청취자에게 아나운서와 해설자는 푸른 그라운드 위에서 뛰던 선수 그 자체였다. 세월은 흘러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의 땀 한 방울까지 안방에서 볼 수 있는 고화질(HD)TV 시대에 살고 있지만 경기를 맛깔나게 중계하는 캐스터와 해설자의 역할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커졌다. 해설자의 익살스런 중계에 폭소를 터뜨리고 경기의 맥을 찌르는 날카로운 해설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4년에 한번씩 치열한 시청률 전쟁을 펼치는 월드컵에서 방송사의 성적을 좌우하는 건 뛰어난 카메라 기술도, 생생한 음질도 아닌 바로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입담이다. 케이블ㆍ위성의 등장으로 국내 프로 스포츠는 물론 메이저리그,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한 전세계 최고의 경기를 안방에서 편안하게 감상하는 호시절에 입심 하나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그라운드의 ‘진정한 꽃’ 캐스터와 해설자를 만나 보자. ■하일성은 갔다. 이순철이 왔다. 82년 프로야구 출범 이래 야구 해설의 양대 산맥은 줄곧 KBS 하일성과 MBC 허구연이었다. 하일성이 경기의 전체적인 맥을 크게 짚으며 승부처를 찾아내는 데 강했다면 허구연은 동작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따지며 철저하게 분석하는 게 장기였다. 경기가 뜨거워지면서 7, 8회쯤 승부가 한 순간에 뒤집힐 때면 하일성은 사람 좋게 허허 웃으며 이런 멘트를 날리곤 했다. “아~ 야구 몰라요~” 올 들어 야구 좀 본다는 이들의 화제는 단연 ‘비난 해설의 거성’ 이순철이다. 해태 타이거즈 선수로 LG트윈스 감독으로 초록 그라운드 위에만 있던 그가 방송에서 이만큼 잘 나갈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특유의 직설적 화법과 경기 중간중간 날카로운 지적으로 선수 시절의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해설은 솔직하다. 자신이 감독으로 있던 LG전 첫 중계에서 “카메라가 중계석을 비춰주니 좋네요. 저도 팬이 있죠. 물론 안티도 있지만…”이라며 LG팬을 당황시키더니 최근 부진한 롯데 정수근에겐 “나이도 젊은데 노는 건 다음에 놀 수 있다”며, 슬라이딩하는 선수에게 발을 걸자 “동업자 정신에 위배되는 행위”라며 쓴 소리를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아나운서가 투 스트라이크에서 착각해 “삼진입니다”라고 하자 “요즘은 투 스트라이크가 삼진입니까”라고 무안까지 준다. 그의 ‘비난 해설’ 덕분에 MBC ESPN은 스포츠 채널 중 시청률 1위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야구 중계의 맛깔나는 해설 하면 과거 차명석(현 LG 불펜코치)의 ‘자학 해설’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마이크를 놓은 지 벌써 4년이 지났지만 그의 어록은 여전히 야구팬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스포츠 선수 부인들이 대부분 미인 아닙니까”라는 말에 “그런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참히 깨버렸죠”라고, “저는 올스타전 추억이 참 많습니다. 뽑힌 적이 한번도 없어서 가족들과 늘 여행을 떠났거든요”(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중계 중), “나와 매덕스가 닮은 건 공 느린 거 하나 뿐이다” “선수 시절 1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투수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당시 코치는 ‘너 같은 투수는 10분에 하나씩 나온다’고 하더라” 등 웬만한 개그맨도 그에게 명함을 내밀진 못한다. 이 밖에도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해설자는 많다. 90년대 국내에 메이저리그가 처음 소개될 때부터 전문가급 해설로 꾸준히 사랑 받는 송재우(엑스포츠), 재기발랄한 말솜씨 뒤로 선수 시절 불운이 잊혀지지 않는 박노준(SBS), 1,000경기 연속 해설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부산 갈매기’의 자랑 이성득(KNN)…그들이 있기에 프로야구 중계는 오늘도 즐겁다. ■축구가 있음에 그들이 있다. ‘축구 중계’ 하면 떠오르는 그들이 있다. 바로 송재익과 신문선. 98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예선 당시 이른바 ‘도쿄 대첩’으로 불렸던 한일전에서 “후지산이 무너집니다” 한 마디로 ‘국민 해설가’ 반열에 오른 그들은 이후 지난해 독일월드컵까지 방송사를 바꿔가며 콤비 플레이를 과시했다. 이들 해설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재치 넘치는 비유. “저런 플레이는 자갈밭에서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읽는 행동이군요” “벼랑 끝 일본, 한국이 구명줄이 될 것인가, 초상집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가는 문상객이 될 것인가” “며느리 시아버지께 밥상 들여가듯 센터링을 잘 넣어 줬네요” 등 어록은 시청자의 사랑과 동시에 비유가 너무 지나쳐서 관전에 방해가 된다는 지적도 받아 왔다. 아쉽게도 이들 콤비는 독일월드컵 이후 계약 만료 등의 이유로 이젠 만날 수 없게 됐다. 요즘 축구 해설의 떠오르는 총아로는 한준희를 꼽을 수 있다. 과거 명해설자들과 달리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케이블에서 수많은 유럽리그 중계의 경험을 살려 월드컵 중계에서 해외 유명 선수들에 대한 명쾌한 분석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주특기는 ‘샤우팅’. 해외 토픽감으로 과거 남미쪽 중계에서나 볼 수 있었던 흥분조의 감탄사로 축구 중계의 진수를 보여준다. “드로그바, 드로그바, 반~데사르~ 고올~ 골~” 그의 해설을 따라가다 보는 이의 목이 다 쉰다. 그의 샤우팅이 부담스럽다면 ‘한국식 정통 중계’ 서기철-이용수 콤비가 낯익을 터. 독일월드컵 때 독특한 ‘홍보 광고’로 살짝 튀긴 했지만, 차분하고 묵직한 중저음을 무기로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그들의 중계는 정통파에 가장 가까운 중계방송으로 평가 받는다. 차두리는 독일로, 차범근은 수원 삼성으로, 수많은 선수 출신 해설자들이 등장했다 바람처럼 사라져도 꾸준히 자리를 지키며 K-리그로 시청자들과 호흡하는 것 하나만으로 사랑 받기에 부족함 없는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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