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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고무줄 잣대' 논란

'강정원 손보기' 분석속 KB금융 고강도 조사<br>본질적 같은 사안도 때에 따라 제재 수위 달라<br>"관치 논란 스스로가 자초" 비판 목소리 커져

강정원 서울은행장

금융감독원이 최근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사전검사를 실시하면서 또 한번 금융당국의 고무줄 잣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본질적으로 같은 사안을 놓고도 징계나 검사 수위가 제각각인데다 심지어는 동일한 은행 최고경영자(CEO)의 행위에 대해서도 시기에 따라 다른 제재 수위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이 관치논란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사상 유례없는 고강도 사전검사= KB금융과 국민은행에 대한 금융당국의 최근 사전검사와 내년 1월 종합검사는 눈 밖에 난 강정원(사진) KB금융 회장 내정자를 손보기 위한 수순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외이사제도를 개선한 후 회장을 선출하라는 정부의 권고를 강 내정자가 무시하면서 '괘씸죄'에 걸렸다는 것이다. 실제 금감원은 지난 16~23일 KB금융에 유례없이 종합검사에 버금가는 사전검사를 벌였다. 사전검사가 통상 자료수집에서 마무리되는 것과 달리 일주일 동안 10명 이상의 검사 인력이 투입돼 국민은행의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뱅크(BCC) 투자 등 전방위에 걸쳐 샅샅이 뒤진 것이다. 특히 부서장급 12명의 개인컴퓨터(PC)를 통째로 가져가고 강 내정자의 운전기사까지 면담한 것은 종합검사 때도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더구나 칼끝이 강 내정자와 손잡고 KB금융을 '사설 왕국'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던 사외이사들에까지 향하고 있다. 감독당국은 현재 사외이사들의 불법 및 부정 혐의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계좌추적권을 행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숨죽이는 강 내정자와 사외이사들= 이에 대해 사전검사 초반에 반발하던 사외이사들은 움츠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조담 KB금융 이사회 의장은 "표적검사라고는 보지만 지금은 종합검사를 잘 받는 게 우선 중요하다"며 "상황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 내정자 측도 신임 국민은행장은 내부 승진보다 외부 인물을 수혈해 정부와 화해를 시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금융당국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으려 대응을 자제한 채 내년 경영구상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정부의 칼날이 더 구체화될 경우 이들이 특단의 카드를 던질 가능성도 있다. 조 의장은 "아직 사퇴를 운운하기는 이르다"면서도 "다른 사외이사들과 공동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모임을 가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시중은행의 한 CEO도 "지금까지 정부와 싸워서 이기는 금융인을 보지 못했다"며 "강 내정자가 버티기 힘든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강 내정자가 자진 사퇴할 경우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책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KB금융 회장 선임 과정에서 이철휘 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 등 다른 후보자가 사퇴할 때 진 위원장이 강 내정자에 시그널을 잘못 주면서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는 얘기가 많다"고 말했다. ◇금융감독, 고무줄 잣대 논란= 이번 사태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금융당국의 자의적인 검사 및 제재도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우선 금융당국은 2월 KB금융 사외이사들이 국민은행과 부적절한 거래를 했는지에 대해 조사한 바 있다. 당시 금감원은 몇몇 사외이사의 문제점을 파악하고도 법규 위반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경영 유의' 사항 정도로 조치했다. 이 때문에 "KB지주 회장 선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이중으로 제재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고무줄 잣대 논란은 한두 번이 아니다. 금융당국은 9월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에 대해 우리은행 재직 시절의 파생상품 투자 손실의 책임을 물어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내렸다. 2007년 6월 우리은행 종합검사 때는 책임을 묻지 않다가 뒤늦게 금융맨으로서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2007년은 황 전 회장이 정부 실세와 가깝다는 평가를 받을 때였다. 더구나 정용근 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의 경우 파생상품 투자 과정에서 관련 규정을 위반했지만 황 전 회장보다 한 단계 징계 수위가 낮은 '문책' 제재를 받으면서 형평성 논란까지 불거지기도 했다. 또 2005년 11월에는 금융감독위원회가 거액의 양도성예금증서(CD) 횡령사고와 관련, 사고 발생회사의 CEO인 최동수 조흥은행장에 대해서는 '문책 경고'를, 강정원 국민은행장에는 한 단계 낮은 '주의적 경고'를 내려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고 금액이 큰 국민은행의 강 행장과 금감원 출신인 유지홍 조흥은행 상근 감사위원에게는 주의적 경고 처분을 내리는 바람에 조흥은행 노조까지 반발하기도 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조사나 징계는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을 갖춰야 한다"며 "지금처럼 형평성·적정성에 의문이 제기된다면 누가 금융당국을 신뢰하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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