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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도 특허 공세에 몸살… 로열티 요구 규모 수조원 달해
무료 공개 SW 혁신에 큰 도움… 특허는 공유물 인식 전환 필요
노키아, 모토로라. 한때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을 좌지우지했지만 지금은 삼성전자, 애플과의 경쟁에서 패해 변방으로 밀려난 업체들이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실적 부진에 시달리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특허 소송을 적극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품으로 경쟁사를 견제하기 어려워지자 특허를 이용해 상대방을 압박하고 돈(로열티)까지 덤으로 챙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는 글로벌 IT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특허전쟁의 극단적인 부작용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몰락한 IT기업, 특허괴물로 변신= 노키아는 지난 2004~2005년 휴대전화 시장이 절대 강자였다. 그러나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대에 들어서며 혁신에 성공하지 못했고 애플, 삼성전자 등 후발주자에 따라 잡혔다. 휴대폰 시장에서는 아직 2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시장의 주류인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5위 밖으로 밀려 난지 오래다. 노키아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고 윈도 운영체제(OS)기반의 제품을 내놓았지만 아직 시장의 반응은 미미하다. 노키아가 경쟁사를 따라잡기 위해 선택한 또 다른 카드는 특허 소송이었다. 노키아는 지난 5월 스마트폰 업체인 대만 HTC와 캐나다 림(RIM), 태블릿 PC업체인 미국 뷰소닉 등을 상대로 무더기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지역과 내용도 광범위해 미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HTC와 뷰소닉을,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는 HTC를 상대로 각각 소송을 냈다.
독일 뒤셀도르프 법원에는 HTC와 RIM을, 만하임 및 뮌헨 법원에는 HTC, RIM, 뷰소닉 등 3개사를 모두 제소했다. 소송 대상에는 총 45개에 달하는 노키아의 통신기술특허가 포함됐다. 노키아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기술과 혁신의 무단 사용 중단을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지만 IT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미국 IT전문 매체인 씨넷은 "이번 소송 결과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이런 특허소송에서의 승리는 노키아에게 또 다른 소득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허 소송에 뛰어든 노키아의 진짜 목적은 로열티라는 얘기다. 삼성, 애플에 밀려 막대한 영업 손실을 입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3만여건에 달하는 보유 특허를 무기화했다는 지적이다.
모토로라도 마찬가지다. 모토로라는 미국과 독일 등에서 애플, MS 등을 상대로 특허 소송을 진행 중이다. 모토로라는 지난해 8월 구글에 인수된 이후 더욱 공격적으로 특허 소송에 나서고 있다.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한 것은 휴대폰 제조기술 보다 특허를 이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한국 IT기업 노리는 특허 괴물= 한국 IT기업들에게 특허괴물(NPE)은 피할 수 없는 존재다. 특히 국내 휴대폰 업계는 NPE들의 공세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합작 설립한 NPE인 록스타비드코는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국내 휴대폰 3사에 자사가 보유한 통신 비표준 특허를 침해했다며 거액의 로열티를 요구해 협상이 진행 중이다. 국내 휴대폰 3사에 요구하는 로열티 규모는 수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6년에는 NPE인 인터디지털이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제기해 로열티를 받아냈고 팬택도 인터디지털과 인털렉추얼벤처스에 특허 사용료 대가로 지분을 넘겼다. 이 밖에도 수백 개의 특허 괴물들이 세계 휴대폰 시장의 강자로 떠오른 국내 제조사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몰락한 IT기업들이 특허를 특허 괴물에 넘기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노키아는 최근 경영난 개선을 위한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브링고라는 특허 괴물에 500여개의 특허를 매각했다. 이 중에는 3세대(3G) 광대역코드분할다중접속(WCDMA) 표준 특허와 비표준 특허 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허 괴물들이 마구잡이로 IT기업 사냥에 나서면서 이들에 의한 특허소송은 최근 10년 동안 20배 가까이 폭증했다. 미국의 반특허 단체인 패턴트프리덤에 따르면 NPE가 주도한 미국 특허소송은 2001년 144건에서 2010년 620건, 2011년에는 1,211건으로 늘어났다. 특히 올해는 지난 6월 말까지 2,414건으로 지난해 전체 특허 소송보다 배 이상 늘었다. 소송 대상 기업도 2001년 578개에서 2010년 3,921개, 2011년 5,031개로 늘었다. 올 상반기에는 3,538개였다.
업계 관계자는 "특허 괴물들은 몰락한 IT기업들로부터 특허를 사들인 뒤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며 "한 기업을 공격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여러 기업을 동시다발 적으로 공격을 하고 있어 한국기업들도 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허는 공유물 인식 전환 필요= 특허를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은 '특허는 특정사의 전유물'이라는 잘못된 관념 때문이다. 특허를 기술 혁신을 위한 밑바탕이자 업계 전체의 공유물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와 관련, 폐쇄적인 연구개발(R&D) 대신 최근 수 년간 각광받은 모델은 '오픈소스'다. 오픈소스는 소프트웨어 등을 만들 때 해당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도록 일종의 프로그래밍 설계지도인 소스코드를 무료 공개, 배포하는 것이다.
리눅스(Linux) 운영체제가 대표적으로,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데다 공개된 코드를 기반으로 프로그램을 마음대로 개량ㆍ변형할 수도 있다. 배타적인 권리를 중시하는 특허 제도와는 언뜻 대척점에 서 있는 듯하지만, 혁신과 진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외부의 아이디어가 보태질수록 원래의 아이디어가 업그레이드되는 '집단지성'을 실현하는 셈이다. 트위터가 공개한 소스코드를 활용해 만들어진 수천개의 트위터 애플리케이션은 140자의 문자 이용만 가능했던 트위터에 더 긴 글이나 사진까지 올릴 수 있도록 해 줘 '트위터 생태계'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페이스북, 아마존 등은 오픈소스를 적극 활용해 각각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오픈소스는 앞으로도 3~5년 간은 영향력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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