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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 '흥행' 노린다

용광로의 쇳물보다 더 뜨겁게 살다 간 그들이 왔다.<아나키스트>장동건 정준호 김상중 이범수 김인권 등 다섯 테러리스트의 파란 불꽃 같은 삶을 느와르풍으로 그린 영화<아나키스트>(씨네월드 제작, 유영식 감독)가 '흥행 테러'를 준비하고 있다. 총 40억 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첫 주자<아나키스트>는 시공간 배경을 1920년대의 상하이로 하고 있다.당시 상하이는 용광로와 같은 곳이었다. 세계 각국의 온갖 종류 혁명가들이 질풍처럼 자신의 삶을 내던지던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일제 식민지 출신의 조선 청년, 그 가운데에서도 진한 허무주의 에 휩싸여 있는 무정부주의자들의 청춘을 카메라에 담은 영화가<아나키스트>다. 무정부주의자를 뜻하는 아나키스트는 '선장없는 선원무리'란 어원의 그리스어 아나키야에서 비롯됐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전사는 다섯명. 모두 강렬한 개성으로 가슴속에 각인된다. ■ 장동건-허무주의 인텔리겐차 세르게이 모스크바 대학 출신의 인텔리. 한때 테러 단체의 리더였지만 지금은 아편이 없으면 일제 고문 악몽을 떨치지 못하는 허무주의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터벅터벅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세상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테러를 위해. 장동건은<아나키스트>에서<영웅본색><첩혈쌍웅>의 주윤발 같은 분위기를 진하게 풍긴다. 느와르풍의 외모가 따로 있다면 장동건이 빠질 수 없다. ■ 정준호 - 왕족 출신의 낭만적 휴머니스트 톨스토이를 숭배하는 휴머니스트이자 시인. 인도주의적 품성 때문에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항상 단호하다. 스스로 퇴로를 차단한 채 마지막 거사에 임할 때 혼자 남았음을 확인하면서도 당당하게 죽음에 맞서나간다. 정준호에겐<아나키스트>가 스크린 데뷔작이다. 하지만 그는 첫 작품에서부터 '영화배우'다운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자칫 오버하기 쉬운 배역인데도 정준호는 연기 중심을 잃지 않으며, 영화의 중심까지 붙들고 간다. ■ 김상중 - 냉철한 사상가, 현실주의자 유순한 외모에 비정한 정신을 숨기고 있는 혁명가. 항상 가혹하기에 그는 자신의 죽음까지도 가혹하게 맞이한다. 폐병에 걸려 피를 토하면서도 그는 조직의 실질적인 리더답게 총알 세계 속으로 몸을 던진다. 김상중으로선 오랜만에 제 역을 만난 느낌이다.<마리아와 여인숙><산책>등에서 선보였던 차분한 이미지에 강렬한까지 보탰다. ■ 이범수 - 과격한 행동파, 세상을 불지르고 싶다. "지주가 내게 말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놈. 그래서 난 그 낫을 들어 그 놈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남민전의 전사' 시인 김남주의 시에서 이미지를 따온 배역 돌석. 백정의 아들로 가진 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개심이 불타는 인물이다. 이범수는 투박한 돌쇠 역을 진솔하게 소화해냈다. 동료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는 그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 김인권 - 소년 테러리스트, 그들의 관찰자 나약한 심성의 소년. 아나키스트에 의해 목슴을 건진 다음 테러리스트로 다듬어진다. 하지만 쉽진 않은 일. 그에겐 새로운 시작이 항상 어렵고 그래서 실패로 끝난다. 그 때문에 그는 네 테러리스트의 젊은 날을 기록할 수 있다. <송어>로 스크린 데뷔했던 김인권은<아나키스트>에선 성큼 성장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그래서 지금보다 다음이 더욱 기대되는 배우다. 정경문 기자 입력시간 2000/04/2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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