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인 빈곤율(66세 이상 인구 중 중위소득의 50% 이하인 비율)은 48.5%(2012년 기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11.6%)보다 무려 4배나 높다.
반면 노후준비는 부실하다.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의 평균 가입기간은 8.1년에 그쳤고 소득대체율도 47%(40년 가입 기준)에 불과하다. 대체재인 사적연금은 어떨까. 별반 차이가 없다. 퇴직연금 도입률은 16%다. 급여가 많지 않은 영세·중소기업의 도입은 특히 저조하다. 더욱이 퇴직연금은 극히 보수적으로 운영돼 단기·원리금상품 투자가 대부분이다. 사적연금이 기대만큼의 제 기능을 못하는 셈이다.
정부가 27일 퇴직연금 의무가입 대상을 넓히고 운용규제를 푸는 내용의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내놓은 이유다. 정은보 기획재정부 차관보도 "스스로 노후소득을 준비할 수 있도록 연금의 가입·운용·수령 등의 저단계에 걸쳐 법과 제도, 금융, 세제를 아우르는 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평가는 나쁘지 않다. 전문가들은 "공적연금을 보완할 사적연금제도 활성화와 사각지대 축소를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면서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기금형 도입과 자산운용규제 완화 등에 따라 연금손실 위험이 있고 사업자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등의 논란도 있다.
◇퇴직연금, 덩치 두 배로 커지고 운용규제도 풀려=오는 2016년 300인 사업장 도입 의무화를 시작으로 퇴직연금은 2022년까지 모든 사업장이 도입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 차관보는 "2020년 말에는 퇴직연금 사업장 50만개, 퇴직연금 규모는 170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퇴직연금이 80조원 규모인데 두 배 이상 커지는 셈이다.
엄격했던 자산운용규제도 상당 부분 풀렸다.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의 총 위험자산 보유 한도는 확정급여(DB)형과 같이 40%에서 70%로 상향 조정하고 운용 방법을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는 식이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 국장은 "위험도가 큰 일부 운용 방법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투자를 금지하는 쪽으로 할 것"이라면서 "파생상품은 투자 금지, 실물자산 투자는 펀드로만 가능 등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사용자와 근로자,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기금운용위원회가 퇴직연금의 운용 방향과 자산배분을 결정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를 도입, 연금 가입자의 선택권도 높였다.
◇손실 위험 커지고 기업 부담 증가 등의 논란도=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무엇보다도 늘어날 운용비용과 원금의 손실 가능성이다. 특히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는 개별 기업이 적립금 운용에 더 많은 결정권을 갖게 돼 책임도 커진다. 기금 수탁자가 운용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기금 부실로 손실을 보고 근로자가 연금을 수급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관리감독 등 운용비용도 늘어나 규모가 작은 기업의 경우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단점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제도 변경에 따른 기업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행 시기 측면에서 완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면서 "영세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비정규직 근로자, 영세 중소기업 근로자 등으로 외연을 확장할 방안을 추가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놓고서는 은행·보험사·증권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퇴직연금) 시장 축소를 우려하고 있다. 2022년까지 퇴직연금을 의무화해 전체 퇴직연금 시장이 커지더라도 큰 기업들이 기금형 제도로 빠져나가면 결국 전체 시장은 축소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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