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가인 김 모(45)씨는 최근 해외펀드가 인기라는 소식을 듣고 증권사 지점에 들러 상담을 받았다. 미국과 유럽, 하이일드채권, 마스터합자회사(MLP) 등 다양한 해외펀드를 소개받았지만 김 씨는 결국 가입을 포기했다. 거래할 때마다 내는 배당소득세도 부담이었지만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로 최대 41.8%의 세금을 낼 수 있다는 게 컸다. 자칫 수익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낼 수도 있다는 판단에 김 씨는 과세 부담이 적은 해외상장지수펀드(ETF)로 발길을 돌렸다.
답답한 박스권 장세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자들이 최근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해외펀드에 부과된 세금 문제가 해외펀드 활성화를 가로막는 족쇄가 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국내 설정된 해외펀드 순자산은 58조3,000억원으로 전체 펀드 순자산의 17% 이상까지 확대되고 있다. 해외펀드 순자산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해외펀드 중 개인 투자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주식형 펀드에서는 6개월만에 1조1,500억원이 오히려 빠져나갔다. 기관이 주로 투자하는 채권형 펀드로 신규 자금이 유입되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시장전문가들은 해외펀드의 과세문제가 투자자들의 접근을 제한하고 결국 자본시장으로 자금이 들어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펀드패스포트로 시작될 글로벌 무한경쟁 시장에서 국내 자산운용사들의 경쟁력은 더욱 약화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현재 해외펀드는 펀드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득을 양도차익과 환차익, 배당금 등 소득 원천별로 구분하지 않고 배당소득으로 간주해 과세하고 있다. 해외펀드에 대한 배당소득세는 15.4%로 원천징수된다. 여기에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의 경우 최대 41.8%까지 세금을 부담한다. 결국 종합소득세 최고세율에 해당하는 투자자라면 실수익이 세전수익의 58.2%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100만원의 수익이 발생해도 투자자손에 들어오는 돈은 58만원에 그친다는 이야기다. 반면 국내 주식형펀드의 경우 장내에서 거래된 국내 주식 및 파생상품의 매매 차익으로 인한 소득은 비과세다. 또 해외 주식 집적 투자나 해외 ETF의 경우 발생한 차익은 금융소득이 아닌 양도소득으로 분류되어 22%의 양도세만 내면 된다. 해외펀드의 배당소득세인 15.4%보다 높지만 종합과세에 영향을 주지 않아 해외펀드보다 인기를 더 얻고 있다. 심지어는 역외에서 설정된 해외펀드의 경우 역내에서 설정된 펀드가 매년 한 차례씩 일년간의 이익을 결산해 배당소득을 징수하는 것과 달리 환매 시에만 배당소득세를 부과한다. 국내 운용사가 주로 역내펀드를 설정하고 해외 운용사들은 역외펀드를 설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형평성이 결여된 역차별이 국내 운용사의 경쟁력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글로벌 주식 시장에서 한국 주식시장의 비중은 1.3% 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98%의 거대한 시장이 해외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과세 문제로 인해 많은 투자자금이 국내에 머물고 그러다보니 결국 롱쇼트펀드처럼 시장 왜곡 현상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금융 당국이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등 운용사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 장려하고 있지만 정작 해외펀드 과세라는 족쇄는 풀어주지 않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금융당국이 국내 자산운용사들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해외펀드에 대한 차별적인 과세 문제를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해외펀드에 대해 최소한 종합과세에 해당되지 않도록 분리과세를 적용해 줄 것과 한시적으로 기한을 정해 해외펀드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부여해 운용사들의 경쟁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부에서는 룩셈부르크 식의 시장 활성화 조치를 정부가 내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세법연구센터 조세동향팀 관계자는 "유럽 펀드시장 허브로 자리잡은 룩셈부르크의 경우 최근 대대적으로 세제를 개편했지만 대체투자펀드의 허브로 육성하고자 펀드에 부과하는 세금은 인상하지 않고 펀드 관련 규정도 크게 개편하지 않았다"면서 "이러한 조치로 펀드 허브 국가로서 위상이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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