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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2008년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새 정부의 첫해 경제성적표에는 늘 ‘위기’라는 공통의 키워드가 자리잡고 있다.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첫해 호된 신고식을 치른 김대중 정부(1998~2002)처럼 대부분 직전 정부의 크고 작은, 실패한 경제유산 때문에 ‘불안한 출발’을 해야 했다. 그나마 노태우 정부(1988~1992년)만이 유일하게 전두환 정부로부터 성장가도에 있는 경제를 물려받아 취임 첫해 경상수지가 전년보다 45억달러나 많은 145억달러를 기록하는 등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는 ‘저금리ㆍ저유가ㆍ저달러’라는 이른바 ‘3저(低) 호황’의 단물에 젖어들어 한국 경제의 체질개선 작업을 등한시했다. 이어 정부 출범 초기부터 ‘세계화’를 주창해왔던 김영삼 정부(1993~1997)의 경우 첫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6.1%로 직전해(5.9%)와 비교했을 때 양호한 성적표를 받았다. 그러나 방만한 재정 관리, 미숙한 대외 리스크 관리 등으로 인해 김영삼 정부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자초하게 됐다. 1998년과 2003년 출범한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역시 새 정부 첫해 ‘F’학점의 경제성적표를 받는 수모를 당했다. 환란과 신용카드 사태가 연출됐던 1998년과 2003년은 우리 경제가 저성장으로 주저앉은 해였다. 경제성장률이 각각 -6.9%, 3.1% 등으로 곤두박질쳤고 실질 국민총소득(GNI)도 각각 -8.3%와 1.9% 증가에 그쳤다. 국민들은 새 정부를 반길 여유도 없이 허리띠를 졸라매기에 급급해야 했다. 1998년 ‘I aM Fired(나 해고됐어)’라는 말을 낳았던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첫 출발을 알렸던 김대중 정부는 과거 2차례 오일쇼크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경제 구석구석에서 시작된 고강도의 구조조정으로 환란 당시 바닥난 나라 곳간(외환보유액 39억달러)이 복구되고 임기 말 경제성장률 4.7%를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른바 ‘DJ노믹스’의 처방은 노무현 정부 첫해에 ‘신용위기’라는 폭탄을 안겼다. ‘LG카드 사태’로 상징되듯 신용카드사들의 위기에서 비롯된 금융체제의 불안은 400조원을 넘는 가계부채로 현실화해 노무현 정부 첫해 경제성장률이 3.1%로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렸다. 김대중 정부가 ‘외채’ 위기로 첫해 F학점을 받은 데 이어 노무현 정부는 국내적 요인으로 인해 같은 학점을 받는 아픔이 되풀이된 것.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출범 첫해 넘쳐나는 신용불량자 문제 등 산적한 현안 속에서 1년 동안 무려 253개의 국정과제 로드맵만 만들어내는 등 ‘행동’보다는 ‘로드맵’에만 치중해 화를 자초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아마추어적 열정으로 ‘뜬구름 잡기’에만 몰두하다 쓰디쓴 실패를 맛본 첫해였다. 실제 당시 조윤제 대통령 경제보좌관은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경제 성과는 통계로 말하는 것”이라며 “참여정부 첫해의 경제성장률 3% 내외, 신용불량자 370만명은 결코 좋은 성적표라 할 수 없다”고 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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