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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9월 14일] 시장과 투기장

오철수 <증권부장> 증시발전 최대 관건은 제도적 틀 횡령ㆍ부실상장 막을 장치 마련을 영국에서 주식거래가 시작된지 160여년이 지난 1720년. 영국 증시 역사상 가장 큰 파장을 몰고 온 이른바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 주식 거품 사건’이 발생한다. 남해회사 거품 사건은 주가 폭등과 폭락 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줬던 사건으로, 1637년 네덜란드의 튤립투기ㆍ1720년 프랑스의 미시시피 투기와 더불어 근대 3대 투기 사건으로 불린다. 남해회사는 1711년 영국 정부의 부채를 떠안는 조건으로 남아메리카 무역 독점권을 부여 받았다. 때마침 스페인의 보물선 ‘콘셉시온호’가 인양되면서 ‘배당률 1만%’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내자 남해회사도 무역독점권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낼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면서 영국의 투자자들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국채를 내던지고 남해회사의 주식을 마구잡이로 사들였다.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그해 1월 주당 128파운드였던 남해회사의 주가는 8월에는 1,000파운드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시장의 기대가 너무 지나쳤다는 분석이 힘을 얻으면서 결국 거품은 터져버렸다. 이후 주가는 10분의 1토막이 났다. 이 과정에서 ‘메시아’의 작곡가 헨델도,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던 아이작 뉴튼도 큰 손해를 봤다. 이후 뉴튼은 죽을때까지 ‘남해’라는 말만 들으면 괴로워했다고 한다. 당시 사건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남해회사 사건이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단순히 피해 규모가 컸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사건은 이후 세계 자본시장의 주도권을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겨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사건 이후 영국 의회는 ‘거품방지법(The Bubble Act)’를 제정해 기업이 증시에 상장할 때는 반드시 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기업의 증시상장을 사실상 제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영국의 증시는 130여년 동안 침체에 빠졌다가 거품방지법이 폐지된 이후인 1850년이 돼서야 겨우 활기를 찾았다. 남해회사의 사례는 자본시장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제도적 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버블이 극에 달했던 당시 시장에서는 ‘남해회사 주식을 사면 한해 수백%의 배당을 받을 수 있다’는 루머가 퍼졌지만 이를 걸러주는 공시제도도, 증권 사기를 처벌하는 법률도 없었다. 결국 영국 정부는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돼서야 거품방지법이라는 극약처방을 썼다. 빈대를 방치하다가 문제가 심해지자 느닷없이 초가집 자체를 태워버린 셈이다. 남해회사 사건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증시는 그동안 코스닥 시장을 중심으로 부실 우회상장과 횡령 등 숱한 문제점이 지적돼 왔지만 제대로 고쳐지지 않았다. 특히 우회상장의 경우 해당 기업과 회계법인이 짜고 수년간 분식회계를 해도 이를 검증할 제도적인 장치가 없다. 얼마전 퇴출 결정된 네오세미테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업체는 퇴출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2년 연속 연 매출이 1,000억원이 넘었고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이는 거짓으로 판명됐고 네오세미테크는 퇴출됐다. 우회상장의 문제는 지난 2006년부터 끊임없이 제기돼 왔지만 감독당국은 근본적인 대책마련에 소홀히 하다가 결국 우회상장을 투기세력의 놀이터로 만들고 말았다. 최근 금융감독원 등이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지만 투자자들의 피해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코스닥시장의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자고나면 횡령ㆍ배임사건이 터져나오고 있지만 솜방망이 처벌 탓에 근절이 되지 않고 있다. 주식시장은 상장 회사의 자산이나 미래 수입을 자본화하는 곳이다. 영국 남해회사의 사례에서 보듯이 신뢰할만한 제도적 틀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증시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이것이 없는 곳은 시장이라기 보다는 투기장에 불과하다. 자격도 되지 않는 부실 회사가 뒷문으로 증시에 들어오도록 놔둔다거나 횡령ㆍ배임이 난무하는데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면 결국 시장의 기반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자본시장이 투기장이 되지 않도록 미리미리 제도적인 장치들을 마련해 줘야 한다. /cso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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