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수출 1위 품목인 자동차 산업이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시장 주변에서는 현대차의 글로벌 꿈이 안팎의 악재에 매몰돼 사그라지는 게 아니냐고 우려한다. 현대차를 둘러싼 경영환경은 어느 때보다 불투명하다. ‘현대차=MK’라는 등식이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정몽구 회장의 검찰 소환이 임박했으며 현대차 노조는 이를 호기로 삼아 최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성장 엔진인 자동차 산업을 둘러싸고 검찰의 ‘법논리’와 재계의 ‘산업논리’가 지금처럼 첨예하게 대척점에 선 것 자체가 불행이다. 짙은 안갯속을 헤치고 현대차가 글로벌 톱5로 비상할 것인지, 아니면 이제 막 힘이 붙기 시작한 날개가 꺾일 것인지 모두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 바라보는 ‘현대차 사태’를 시리즈로 짚어본다. “요즘 중국 자동차 산업은 성장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최첨단 설비와 기술을 가진 만큼 앞으로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확신한다.”(자신광(賈新光) 중국자동차공업자문발전회사 수석분석가) 중국의 자동차 전문가들이 밝히는 중국 자동차 산업의 움직임이다. 드러내놓고 강조하지는 않지만 ‘중국의 자동차 산업은 이미 세계 수준에 도달했다’는 자부심을 깔고 있다. 이 말을 한번 더 새겨보면 한국차가 잠시만 한눈을 팔면 중국차가 곧바로 추월할 수 있을 것임을 뜻한다. 글로벌 무대를 거침없이 질주하던 현대차가 환율 하락과 유가, 원자재 값 상승이라는 암초를 만나 헤매다 급기야 검찰의 강도 높은 ‘비자금 수사’에 맞닥뜨리면서 눈에 띄게 비틀거리고 있다. 아직 무게중심을 잃을 정도는 아니지만 무한경쟁의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 상대방의 질주를 따라잡지 못한 채 엉거주춤 지켜봐야 하는 현대차의 입장이 안쓰럽다. 오토 얼라이언스(Auto Allianceㆍ미국 자동차 메이커들의 연합체)의 한 관계자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현대차 사태’에 대해 “솔직히 경쟁자인 우리로서는 기회로 작용하는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이제 막 글로벌 메이커로 도약하기 시작한 현대차가 처한 곤경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대차 사태를 익히 들어 알고 있다”는 자씨는 한발 더 나아가 “한국 검찰의 비자금 수사 여파로 현대차의 사업이 위축된다면 중국 시장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현대차의 위상이) 위태로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신들이 최근 현대차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유사하다. “검찰의 수사가 ‘빅리그’에 진입하려는 현대차그룹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거나 “(현대차가) 해외 시장에서 뛰어난 브랜드로 평가받기 시작한 시점에 검찰의 전면적인 수사를 받게 돼 현대차의 팽창전략이 위축되고 있다(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는 식의 우려 섞인 분석과 전망을 연일 쏟아내고 있는 것. 이 상황에서 갈수록 노골화되는 외국 경쟁업체들의 견제도 큰 부담이다. 마크 반스 현대차 미국법인 부사장은 “도요타와 미국의 ‘빅3’ 업체들은 이번 사건을 강력하게 추격해오던 현대차를 따돌리기 위한 구실로 삼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교롭게도 미국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최근 ‘아시아 5대 자동차 업체의 세계를 향한 질주’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현대차는) 그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아직 현대ㆍ기아차의 브랜드는 약하다”면서 “외부 변수로 상황이 갑작스럽게 악화될 경우 그 충격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재계 원로들이 지난 12일 입을 모아 현대차 수사의 조속한 마무리를 촉구한 것은 시기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하다. 검찰의 법논리도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매우 중요한 잣대다. 하지만 지금은 이제 막 꽃을 피우려는 한국 자동차의 ‘산업적 기회’도 그에 못지않은 ‘국가적 가치’라는 점을 되새겨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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