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권 상단 탈출을 시도하던 한국 증시가 복병을 만났다.
100엔 당 환율이 900원 이하로 하락하면서 한국의 수출 경쟁력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반면 일본 수출 기업들의 주가는 강세다. 글로벌 시대에 맞춰 한 국가 경제의 주축이 되는 대기업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자국 통화 가치의 변화는 기업 실적과 국가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최근 1년간 선진국 통화 중 유로화의 가치 하락이 눈에 띈다. 1년 전만 하더라도 1유로는 1.39달러의 가치가 있었다. 현재는 1.10달러 수준까지 하락했다. 게다가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3월부터 양적완화를 시행하면서 유로화 가치가 앞으로 1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명품 소비재'와 '기술력'은 유럽 기업들을 잘 설명하는 단어다. 루이비통, 로레알과 같은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유럽의 장인정신이 녹아 있는 다임러(벤츠)와 필립스와 같은 기업들도 있다. 이들은 모두 세계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기업들이다.
유로 약세로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유럽 글로벌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은 강화됐다. 실제 지난해 4·4분기부터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유로 약세가 진행되면서 기업들의 이익전망치도 상승하고 있다. 기업의 이익 증가는 주가 상승으로 직결된다.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유로화 약세 수혜주들의 주가는 시장 대비 우월한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여기에 ECB의 양적완화 발표는 불을 지폈다.
3월 중순 이후 달러 강세는 진정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유로화는 강세다. 또 그리스 리스크도 확대되며 유럽 증시와 유로화 약세 수혜주들의 주가는 조정을 받고 있다. ECB의 양적완화에 따른 유로화 약세는 중장기 흐름이기 때문에 최근의 주가조정은 매력적인 투자 기회로 볼 수 있다.
올해 들어 20%가량 급등한 주가와 유로 약세로 인한 환손실은 투자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양적완화 이후 금융시장의 변화를 살펴보면 투자를 주저할 필요가 없다. 약 5년 간의 양적완화를 마친 미국 증시는 해당 기간 동안 153% 상승했다. 현재 양적완화가 진행 중인 일본은 30개월 동안 115% 상승했다. 자국 통화 가치는 하락했지만, 주가의 상승폭이 환율 손실분을 만회했다. 따라서 양적완화의 효과는 환손실 보다 중장기 관점에서 주가 상승에 더 큰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다.
현 시점에서도 유럽의 주가 상승 여력은 충분하다고 본다. 미국, 일본 그리고 유럽의 공통점 중 하나는 글로벌 우량 기업들이 많다는 것이다. 양적완화는 통화 약세를 불러오고, 이는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실적 증가로 이어진다. 자국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진다면 해당 국가의 경제력도 탄탄해지기 때문에 투자매력은 더 높아지게 된다.
현재 유럽은 양적완화 초입 국면이다. 여전히 경기는 불안하지만 유로화 약세로 이미 유럽의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 증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익 전망치도 상향되고 있다. 지난 1월 중순 이후 원화 대비 유로 가치는 10% 하락했지만, 유럽 증시는 20% 상승했다.
일본은 중요한 반환점을 찍은 국면이다. 지난해까지 일본 증시의 상승 모멘텀을 촉발한 것은 엔화 약세였다. 올 들어 엔화 약세는 미미했지만 주가는 많이 올랐다. 다수의 기업들에서 펀더멘털이 개선되는 것이 확연히 눈에 보였고, 경제지표도 긍정적인 반환점을 찍은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양적완화를 종료하고 금리 인상을 준비하는 단계다. 탄탄한 경제가 뒷받침되면서 달러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주가 하락은 상대적으로 제한되는 모습이다. 기업들의 체력이 달러 강세에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도록 단련됐기 때문이다.
결국 유럽 주식 투자는 양적완화 초입기인 현재가 가장 적기다. 최근에 나타난 조정으로 인해 주가 급등에 대한 부담도 덜었다. 유럽 증시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제품 경쟁력을 지니면서도 유럽 외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을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길영 하나대투증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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