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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선거와 한·일 관계(사설)

지난 20일의 일본 총선 결과 연립정권을 이끌어온 자민당이 과반수인 2백51석을 확보하는데는 실패했으나 과반에 근접한 2백39석을 차지하는 일대 약진을 보였다.이는 야당의 지리멸렬상에 비추어 자민당이 연정 파트너를 골라서 선택할 수 있는 입지를 확보한 것으로서 93년 7월 자민당 단독 정부가 붕괴된 이후 3년여 만에 사실상의 단독집권도 가능한 상황이 됐다. 자민당의 승리는 지난 3년여 동안 4차례 연립내각의 이합집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갈수록 보수·우경화하는 일본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선거의 특징은, 첫째 투표율이 전후 최저수준인 59%로 국민들의 정치불신과 무관심이 극명하게 표출됐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일본 국민들이 야당 연립내각에 불신을 표시하면서도 아직은 일당집권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로는 구호로서의 변혁보다는 「안정 속의 변화」를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일본과 깊은 관계가 있는 우리로서는 이번 선거결과를 보며 몇가지 지적할 것이 있다. ○자민 일 당 정권엔 실패 첫째, 일본 국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시대조류에 관계없이 공산당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보수정당이기에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일본정치에 큰 변화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일본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국민들이 바라는 21세기 비전제시에 실패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과거 2차 세계대전에 관한 구태 의연한 입장표명이라든가, 경제 대국으로서 문명사적인 변화를 하고 있는 세계경제에 대한 비전제시가 없었던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보수성향 가속에 주목 둘째로, 이번 선거는 총보수화 경향속에서 치러졌다는 점이다. 일본 보수정당의 외교·안보공약은 거의 비슷하다. 자민당이 독도의 영유권과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선거공약으로 내건 것이나 신진당이 경제력에 알맞게 국제정치 무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상응하는 군사력을 가져야 한다는 이른바 「보통 국가론」을 들고나온 것이 대표적인 예다. 셋째는, 모든 정당들이 행정개혁을 주장한 점이다. 자민당은 현재 22개부처로 돼있는 행정부 조직을 11개로 개편하겠다고 했고, 신진당도 15개 정도로 축소하겠다고 공약했다. 냉전체제 붕괴 후 모든 선진국들이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틀 속에서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기 위한 지혜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심각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총리가 총선 기간중 『개혁의 실패는 상상할 수도 없고 실패할 여유도 없다』고 한 말에서 그 절실성을 읽을 수 있다. 경기의 장기침체가 예고돼 있는데다 「경쟁력 10% 향상」이 당장의 목표가 돼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각별히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마의 3각」이라는 정·관·재의 「3각 유착」을 타파하지 않고는 일본이 21세기를 주도할 수 없다는 인식은 정경유착형 비리가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우리 실정에도 타산지석이 돼야 하리라고 본다. ○경제 대국다운 역할 기대 전반적으로 일본선거 결과를 보는 우리의 입장은 석연치 못하다. 일본 유권자들의 정치무관심 속에서 보수세력은 점차 득세하고 진보세력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일본이 재무장이나 영토문제와 같은 인접국들을 자극하는 내용의 선거공약을 이행하려 들 때 지역의 안정은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이며, 일본은 동북아지역에선 물론 국제적으로도 결코 21세기를 리드할 자격을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중상주의 시대의 정치와는 다르게 지금의 정치는 세계 속에서 일본의 역할을 국민들에게 바르게 제시해주어야 한다. 경제력에 바탕한 군사력으로 세계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던 시대는 지나갔다. 구소련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주변국들과의 분쟁에서 무력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보여줬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도덕적인 권위를 가져야만 한다. 그것만이 일본 스스로는 물론 주변국들을 위해서도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다가오는 21세기는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도덕적 권위에 의해 질서가 형성되는 시대임을 하시모토 2기 내각이 명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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