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FTA의 금과옥조(gold standard), 가장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개방.’ 올해 초 본격적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앞두고 미 무역대표부(USTR)는 “한미 FTA가 전세계 무역협정의 새로운 틀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며 양국간 FTA의 목표를 이같이 제시했다. 예외 없는 시장개방을 통해 서비스업 등 낙후된 산업을 발전시키기를 원했던 우리 정부도 미국의 선언을 내심 반겼다. 하지만 1차와 2차 협상에 이어, 그리고 3차 협상이 임박하면서 ‘FTA의 표준모델’이라는 미국측의 입장은 단순 수사(修辭)로 굳어져가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의 FTA를 자동차, 의약품, 농업(쌀) 등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큰 산업에서만 우리 시장을 100% 개방시키겠다는 아주 제한적인 목표를 설정한 것. 교육ㆍ의료 등 미국의 입장에서 추가적인 이익이 기대되지 않은 분야에서는 한국 시장 개방에 별다른 유혹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측 이해관계가 몰려 있는 섬유 등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 시장은 여전히 폐쇄적인 모습에서 변할 기미가 없다. 산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그간 보여온 행동을 볼 때 금융ㆍ무역구제ㆍ섬유 등 다른 분야들은 자동차 등 핵심시장을 열기 위한 지렛대로 사용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미 FTA가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되는 진정한 자유무역에의 길을 열어줄 것인지 의문시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말뿐인 포괄적인 개방=3차 협상에 앞서 우리는 금융 분야에서 미국에 16가지 항목의 개방을 요구했다. 미국의 반응은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연방ㆍ주 정부는 물론 관계 민관기관들이 시애틀로 날아와 이 같은 입장을 강조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섬유의 얀 포워드, 반덤핑의 제로잉 규정 등 우리가 시정을 요구하고 있고 국제적으로도 반경쟁정책으로 분류된 여러 항목에 대해서도 미국은 ‘개선불가’로 일관하고 있으며 전문직 취업비자 쿼터 할당 요구도 안보상의 문제까지 거론하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깊어지는 한국의 딜레마=FTA 협상에서 미국이 강력히 내세우는 항목을 보면 특정 산업과 품목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이 드러난다. 미국이 요구하는 주요 내용은 ▦자동차 배기량 기준 세제 폐지 ▦쌀 등 농산물 10년 이내 시장 개방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의약품 허가시 특허심사 체계 개선 등. 자동차ㆍ의약품 등의 시장개방이 마치 FTA의 모든 것처럼 비춰지고 있는 것.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이 같은 일련의 미국측 전략을 볼 때 “우리가 얻을 것은 별로 없는 불공정 게임이 될 가능성도 적지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전개되면서 우리 정부의 속도 시커멓게 타 들어가고 있다. 적극적인 시장 개방을 통해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정부의 목표가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재정경제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서비스 시장을 열어도 미국이 안 들어오면 큰 걱정”이라고 토로한 적이 있는데 현재 미국의 전략을 볼 때 현실화될 여지가 다분하다. 한미 FTA 협상 출범 전에 미국은 화려한 수사를 동원하며 높은 수준의 개방을 외쳤지만 실제 속내는 자신들이 필요한 일부 산업의 제한적인 시장 개방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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