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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 파장… 재계 대응책 분주

◎“재벌도산 이젠 남의 일이 아니다”/그룹, 거래선강화·자금상태 파악나서/M&A·투자 등 중장기전략 재검토도/“무리한 확장지양·내실경영강화 계기 삼아야”「누구나 망할 수 있다.」 한보철강의 부도로 한보그룹 전체의 운명이 절망적인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주요기업들이 새삼 확인하고 나선 내용이다. 재계랭킹 14위의 한보가 하루아침에 공중분해의 운명을 맞은데 대해 재계의 충격은 크다. 주요그룹들은 24일 아침부터 한보부도의 직간접적인 피해조사를 하는 한편 거래선관리 강화 방안과 계열사별 자금상태 등을 중점 파악했다. 특히 재계는 자금사정이 악화되면서 부도 도미노 현상이 다른 업종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며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최근 경기침체로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의 도산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보사태가 터져 거래선 실태파악, 담보강화 등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한보철강 부도 이유, 전망 등에 대한 정보수집과 함께 이런 사태가 정부의 대재벌정책에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추진해온 경영전략과 투자, 인수합병을 비롯해 중장기전략에 이르기까지 재검토에 나서기로 하는 등 한보의 부도사태는 국내기업들의 경영전반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는 한보그룹을 국내기업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으려는 내용은 많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기업위기에는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진리」를 재확인시키면서 무디어진 위기의식에 대한 자각과 자성의 계기가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고속성장 신화의 주인공이 어느날 비운의 주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은 최근 대부분의 기업들이 추진하고 있는 「비상경영」과 「경영혁신」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지적이다. 노동운동에도 적잖은 파장과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경제단체의 한 임원은 『23일자 일간지에 실린 경제5단체의 광고는 설득력이 컸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신문에는 「한보철강 부도」와 「경제를 살리려는 노력도 못해보고 근로자와 기업이 함께 사라져야 하겠습니까」라는 제목의 경제단체 광고가 나란히 실렸다. 노동법에 대한 홍보광고지만 제목으로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는 평. 한보사태가 노동계에 미치는 영향은 이날 쌍룡자동차 노조가 「무기한 무교섭」을 결의, 전격발표한 데서도 확인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쌍용노조는 한보가 부도처리를 피할 수 없다는 소식이 전해진 23일 저녁부터 대의원대회를 열어 장시간의 난상토론 끝에 이같은 극적 결의를 이끌어냈다. 쌍용노조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회사측은 『위기에 처한 회사를 일단 살려놓고 보자는 절박한 인식에 대한 공감과 함께 특히 한보가 과도한 부채, 누적적자, 극심한 자금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부도처리됐다는 사실이 노조측의 결단에 촉매제로 작용한 것으로 본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에따라 재계에서는 한보에서 촉발된 노조의 위기의식이 쌍용을 통해 다시 현대나 기아등 다른 업체들에도 파급될 가능성까지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기아자동차 노조는 이날 휴무일인 25일에도 정상근무, 파업에 따른 차질을 만회하기로 했다. 이번 사태는 스스로의 힘이 생존의 유일한 수단이라는 무한경쟁의 냉엄한 현실을 재확인시켰다는 게 업계의 시각. 사실 한보는 상식적으로 풀리지 않는 부채규모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의 능력보다 외부의 지원으로 회사를 경영해왔다. 지금까지 국내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해 「그것도 능력이다」고 인식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보의 도산은 이런 구조가 갖는 분명한 한계를 증명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는 무리한 사업확장을 지양하고 내실경영을 보다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즉, 이번 사태는 능력이상의 투자나 사업확장에 대한 정부와 금융권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앞으로 기업들의 경영패턴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정부에서 거론하고 있는 일부업종의 구조조정을 보다 앞당길 수 있는 계기가 되는 한편 정도경영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부각시켰다』고 말한다. 사실 한보는 항상 「로비」란 단어로 둘러쳐져 있었다. 정도를 추구하는 기업은 결코 아니었다. 한보사태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구조조정을 앞당기거나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데 대해서도 재계 관계자들은 동의하고 있다.<박원배> ◎포철,위탁경영 어떻게 하나/82년 일신제강 1년반만에 정상화 저력/“한보 부실독 너무 커” 깊숙한 개입 꺼려/인수기업 안나타나면 손쓸수도 없어 고민 포항제철은 한보철강의 위탁관리를 맡길 것이란 은행채권단의 발표가 나오자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포철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위탁경영을 하라면 받아들 일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면서도 『하지만 규모가 큰 기업을 경영한다는 중요한 문제를 사전에 전혀 협의조차 갖지 않은 것은 문제가 아니냐』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한보철강의 부도이후 부채만 5조원에 이르고 사업전망도 불분명한 이 「괴물덩어리」를 과연 포항제철이 위탁경영을 통해 정상화시킬 수 있을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포철은 한보철강에 기술지도를 했을만큼 제철소 운영경험과 기술노하우가 충분하지만 정상화가 막연한 한보철강에 경영인력과 기술인력을 무한정 파견할 수 있을 정도로 자원이 풍부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포철이 그동안 위탁경영을 해온 경험이나 기술력, 자금사정을 종합해 볼 때 한보철강을 당분간 맡아줄 기업은 포철밖에 없다는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포철은 아직까지 채권은행단으로부터 위탁경영 요구를 공식 접수받은 적은 없지만 요청이 들어오면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이다. 포철은 지난 82년 장령자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영위기에 몰린 일신제강(현 동부제강)을 1년반동안 맡아 경영을 정상화시켰고 86년에는 지분다툼에다 노사분규까지 겹쳐 좌초직전에 이른 연합철강(현 동국제강 계열사)을 경영정상화시켰다. 포철은 한보를 맡을 경우 자금지원이나 원자재공급, 공정지원을 비롯한 인수식 경영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위탁경영을 하더라도 석달여 앞으로 다가온 당진제철소의 정상가동 이후 제3자 인수 때까지의 경영을 일시적으로 맡아주는 선까지만 개입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 관계자는 『위탁경영이 결정되면 경험이 많은 현역경영인 3∼4명을 파견해 공장 정상가동에 역점을 둘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철이 한보철강 경영에 깊숙이 개입, 말려들지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힘에 따라 위탁경영은 장기화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땅한 인수기업이 나타지 않는 이상 손을 털고 일어날 수도 없다는데 포철의 고민이 있다. 포철 관계자는 『한보철강은 어느 누구도 먹기 힘든 날복어』라고 비유한다. 부실이라는 독성이 너무 강해 그대로 삼켰다가는 기업 모체마저 위험지경에 빠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한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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