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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版 ‘개미와 베짱이’

얼마 전, 어느 기업인을 만났다. 30여 년 동안 오로지 한 회사에 모든 인생을 바친 끝에 지금은 중견 간부의 반열에 오른 성공한 기업인인데 그가 요즘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상부 경영측의 실적에 대한 압박, 노조의 잦은 파업으로 인한 스트레스, 정치자금 수사 등으로 인한 회사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자신이 관리하는 현장 직원들의 변화된 직업의식과의 충돌 등으로 잠을 못 이룬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표 기업의 간부로 누가 보아도 부러워할 만한 지위에 있는 분의 솔직한 말을 듣고 `개미와 베짱이` 우화 2탄을 떠올렸다. 여름에 개미가 너무 일을 열심히 한 나머지 그만 허리디스크에 걸려 드러누웠는데, 베짱이는 꿈에도 그리던 음반이 히트되어 돈방석에 앉자 병원비를 내어 개미의 병을 치료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가치관이 지배하던 70년대와 80년대에 한국의 경제를 일구어 온 주역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개미의 가치관`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왔지만 자신들과 사뭇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살고있는 후배들과 마주치고 있다. 그 가치관은 문화와 창의성과 놀이 정신을 지닌 `베짱이의 가치관`이다. 7, 80년대에는 여유 있는 사람의 오락거리나 재능을 타고난 특수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활동으로 여겼던 베짱이의 문화 예술 활동이 지금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만큼 거대한 경제 활동으로 성장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 분야의 일을 지망하고 그러한 정서를 가지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개미의 가치관과 베짱이의 가치관은 어떻게 다른 걸까? 단순화 시켜보면 개미는 권력과 계급에 의한 권위주의, 집단을 우선시하는 전체주의, 일방향에 익숙한 인간관계, 전통에 대한 향수와 존중, 지역적 특수성과 민족주의로 요약되고 베짱이는 전문성과 능력에 의한 권위주의, 개성을 우선시하는 개인주의, 쌍방향의 인간관계, 현대성에 대한 동경과 지향, 국제적 보편성과 세계시민 의식에 기울어져 있다고 본다.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갈등들은 20세기를 지켜 온 개미의 가치관과 21세기를 살고 있는 베짱이의 가치관이 대립하고 혼재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문화 예술에 종사하는 우리 베짱이들이 그 동안 개미들이 땀 흘려 일구어 놓은 이 사회를 위해 뭔가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김명곤(국립극장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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