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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추억

북한 공산군이 남한을 침략해서 6·25가 일어난지 49년째가 되는 6월이다. 6·25가 다가오면 생각나는 것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고 다른 하나는 감옥안에 있을 때의 기억이다.내가 38년생이니 6·25가 발발했을때 13세였다. 그 나이에 나는 여름이나 겨울을 가리지 않고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에 와서 지게를 지고 일을 했다. 여름이면 산에 가서 풀을 베어다가 소를 먹이고 겨울이면 죽은 나무가지나 그루터기를 주워다가 밤마다 사랑방을 덥힐 뗄감으로 사용했다. 특히 여름방학때는 하루 세짐씩 풀을 베어오는 것이 매일의 일과였다. 아침이면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소를 끌어다 풀밭에 놓아두고 풀을 한짐 베어온다. 아침을 먹고나면 더워지기 전에 바로 또 한짐을 베어 온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바닷가에 나가서 멱을 감고 놀다가 해질녘이면 어김없이 풀 한짐을 베어 메고 소를 몰고 온다. 이것이 거의 매일 반복되는 일과였다. 6·25가 나던 여름에도 나의 이런 일과는 계속됐다. 지금 생각하면 9월 말로 짐작된다. 느닷없이 철모를 쓴 군인들이 소총을 메고 마을에 나타났다. 그들은 인민군이라 했다. 우리는 공포에 떨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에 해군 함정 두척이 동네 앞에 닻을 내렸다. 인민군이 다녀간 직후였다. 저녁때 소를 몰고 와야 되겠는데 군함에서 써치라이트를 비추고 있어서 겁에 질려 발이 떨어지지 않고 오금이 펴지지 않았다. 정말 무서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밤사이에 인민군은 도망가고 해군함정은 다음날 인천상륙작전을 위해서 북으로 달려갔다. 지금도 써치라이트 빛이 무서워서 오금을 못폈던 그때를 생각하면 내가 촌놈중에 촌놈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또 다른 한가지는 장마와 관계되는 기억이다. 내리 3년 감옥살이를 하다가 보니 6·25날을 세번이나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6·25날 비가오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비가 오는 본격적인 장마가 온다. 6월에 들어서면 비가 오다가 몇 일씩 햇볕을 볼 수 있는 날이 이어지고 또 그것이 반복된다. 그러나 6·25때부터는 거의 햇볕을 볼 수 없는 날이 시작되다가 7월28일쯤 되면 하얀 구름이 뚝뚝 떨어져 나가면서 푸른 하늘이 보이다가 8월초가 되면 장마가 완전히 걷히는 것이었다. 내리 3년 감옥 안에서 보낸 6·25날은 어김없이 본격적인 장마의 시작이었다. 평범한 경험이고 누구에게나 흔한 관찰이지만 365일의 1년 주기가 그렇게도 정확한가 하는데 감탄을 금할 수가 없을 뿐이다. 신이 창조한 우주만물이고 법칙이지만 사람은 무심코 지나치기가 일수인 것이다. 해마다 6·25만 되면 생각나는 두 가지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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