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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지구가 하나 더 있다면

金容元(도서출판 삶과꿈 대표)어떤 재벌그룹의 주력기업 사장들이 도쿄에 있는 신일본제철(新日本製鐵)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검은 곤색계통의 양복을 유니폼처럼 입은 사장들이 그룹총수를 따라서 그 쪽 회장실로 안내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직책을 소개받으며 인사를 나누던 당시의 사이토회장이 이 때 밑도 끝도 없이 「또 하나의 지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한마디를 했다. 느닷없는 엉뚱한 한마디에 한국의 경영자들은 묵묵부답이어서 그 뜻을 알아들었는지 못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짐작컨대 연로(年老)한 일본 경영인으로서는 젊고 야심차 보이는 한국의 경영인들을 대면하며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본과 한국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을 순간 연상했는지 모른다. 또 하나의 지구가 있어서 일본과 한국이 서로 구역과 업종을 넉넉하게 나누어 갖고 세계시장을 편안하게 공략했으면 하는 희망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벗어나면 세계 도처에서 한국과 일본기업들은 맞부닥친다. 기술, 자금력, 품질, 국가적 백그라운드 면에서 아직 우리가 열세이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헝그리 정신」이 있어서 모험적인, 저돌적인 기세로 승부를 겨룰 때에는 우리가 강세일 수도 있다. 국가간의 이해관계라는 것이 있어서 일본쪽만을 다 선호한다고 볼 수 없다. 대체로 보면 살기 좋은 선진국에서는 우리가 밀리고 생활 조건이 나쁜 후진국에서는 일본이 우리에게 밀리는 듯하다. 일본은 이미 부자 나라가 돼서 우리보다는 고급화됐고 입맛도 까다롭다. 자연 환경이 나쁜 곳, 위험한 곳, 교육문화시설이 빈약한 곳, 돈 받기 어려운 가난한 나라에는 잘 가려하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 기업들은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될성싶으면 한판 벌이기를 좋아한다. 식성도 왕성해서 일본사람들이 버리는 것, 미처 다 먹지 못하는 것, 뒤탈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 등을 덥석덥석 먹는다. 우리 형편에 그 방법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우리 기업들이 여러가지 불확실한 상황속에서 구(舊)사회주의 국가들로 대거 몰려가 큼직큼직한 프로젝트들을 겁없이 벌이는 것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일본 기업들이 잘 가지 않는 지역에서는 우리 기업들의 독무대라 할 수 있다. IMF사태로 한국기업의 해외전략에 브레이크가 걸려 있는 시점에 노마크 찬스로 남아 있는 곳이 북한이다. 소떼와 금강산관광으로 물꼬를 튼 현대그룹의 북한진출은 비즈니스 측면으로 볼 때 엄청나게 큰 베팅으로 봐야 한다. 현대그룹의 독식판으로 잘 무르익어 갈 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듯하다. 안팎의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이 너무 많이 얽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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