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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GRADE 한국의 노사문화] 2-4.어떤 나제도 제도적 틀안에서 ② 프랑스

가랑비가 간간히 흩뿌리는 프랑스 파리 교외 블노뉴 비엉꾸르. 세느강을 끼고 있는 이곳엔 삼성차를 인수해 우리에게 무척 낯익은 르노 본사가 자리잡고 있다. 날씨 탓에 거대한 건물은 다소 우중충한 느낌이었지만 내부 분위기는 주요 뼈대를 제외하곤 지붕ㆍ외벽 등에 모두 대형 유리를 사용한 내부 분위기는 밝고 산뜻했다. `적자 투성이` 공기업에서 지난 80년대 초 민영화 시작 이후 알짜배기로 환골탈태한 르노의 역사를 웅변하는듯 했다. 르노는 지난 96년 민영화후 처음 커다란 경영 위기를 맞았다. 슈웨체르 회장은 당시 벨기에ㆍ프랑스 공장에서 3,000명을 과감하게 감원했다.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 여기에 대해서는 노조도 흔쾌히 동의했다. 회사는 대신 총 주식의 3.36%를 종업원들에게 자사주로 나눠줬다. 회사의 위기와 비전에 임직원 모두가 보다 깊은 공감대를 나눌 수 있기 위해서였다. 민영화 전에도 르노는 지난 82~84년 최악의 경영 위기가 있었다. 당시 르노는 미국 자회사를 폐쇄했으며 4만명 이상을 정리해고 했다. 임직원들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했다. 조르주 베스 르노 전 회장은 이 와중에 집 앞에서 암살당했다. 조직을 수술해야 했던 경영진이나, 어느날 갑자기 일자리를 빼앗겨야 했던 임직원들이나 양측 모두 당시 르노의 현실을 이해하는 공감대를 만드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민영화후 르노는 완전히 달라졌다. 현재 부채비율은 사실상 0%. 지난 96년을 제외하면 민영화이후 매년 흑자를 달성하고 있다. 미셀 드 비르빌 르노 인사담당 총괄 임원은 “95년 이후 7년 동안 단 한차례도 파업도 없었다”며 “서로 쌍방향 대화 채널을 갖고 수시로 대화를 통해 회사 내부의 일을 투명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파업 천국`은 옛말= `고속도로를 점거한 트럭 행렬, 파업으로 발이 묶인 지하철, 조종사 파업으로 텅 빈 하늘, 그럼에도 별다른 불평 없이 차분한 시민들`. 프랑스 노사문화에 대한 국내 선입견이다. 11월말에도 10만명의 공공 노조원이 시위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선입견은 현지 사용자 단체와 노조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점차 깨져나갔다. 베르나르드 기루 프랑스경영자협회(MEDEF) 언론 담당 국장은 “민간 기업에서는 노사 대립이 거의 없고 민영화 과정의 공공 부문의 마찰이 조금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제는 변했다”는 것. 그는 이어 “지난 60년대에는 연 인원 400여만명이 파업에 동참했으나 70년대에는 200만명, 80~90년대에는 100만명 이하로 크게 줄었다”며 “특히 전체 노조원의 1% 미만인 철도 노조(SNCF)가 분규의 25%를 일으키고 효과도 큰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강성 노조로 알려진 민주노동총연맹(CFDT)의 장 피에르 풀레 대변인도 “철도나 지하철, 항공 등의 파업은 생활에 피부로 다가오기 때문에 눈에 띄는 것”이라며 “노사간 타협을 항상 중시하고 있으며 파업은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과격한 투쟁 방식도 거의 없어진 상태다. 풀레 대변인은 “10년 전에는 지하철 전노선의 발을 묶고 전기도 막무가내로 차단했다”면서 “지금은 병원 파업의 경우 리본이나 배지 시위, 지하철도 일부 노선만 파업하는 방식으로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변하는 `노동자 낙원`= 프랑스 정부는 80년대 르노, 위지노-사실로 등 20여개의 지분을 매각하는 등 공기업 민영화에 시동을 걸었다. 90년대 후반에도 20여개 대기업의 보유지분(약 33조원 규모)을 지속적으로 매각, 정유업체 토탈피나와 엘프아키텐 주식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 손으로 넘어갔다. 3대 시중은행인 소시에테제네랄과 BNP파리바, 크레디리요네가 모두 민영화됐다. 사회주의 전통이 강한 프랑스에서 `고용 안정`의 신화가 깨지고 `미국식 자본주의`를 도입하고 있는 것. 이는 좌파 정권도 마찬가지다. `좌우 동거` 정부를 이끌던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는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안`을 경제 성장과 고용 창출을 막는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현 자크 시라크 정권 역시 노동계 반대를 무릅쓰고 정부 부문 인력삭감, 연금 개혁, 공공서비스 자유화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유럽 경제 버팀목으로= 이 같은 구조조정 노력과 노사정 협력에 힘입어 프랑스는 지난 몇 년 간 서유럽에서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 2001년 경제성장률은 3.5%를 기록했고 인플레이션은 제로에 가까웠다. 지난해에는 유럽 통합 후유증과 독일 경제 침체 등의 여파로 1.2%를 기록, 주춤했지만 독일(0.5%)ㆍ이탈리아(0.7%)에 비해서는 나은 수준이다. 올해도 2.3%로 회복세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대대적인 정리 해고에도 불구하고 경제 회복에 힘입어 실업률도 뚝 떨어졌다. 지난 98년 11%에서 2000년 9.1%로 10년만에 처음으로 9%대를 기록한 이후 2001년(7.8%), 지난해(9.3%) 등 3년째 한 자리수대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 `3+5`회담] 정부, 노사분규 개입않고 엄정중립 지난 99년 프랑스에서는 노사 문화를 바꾸는 결정적인 협약이 맺어졌다. 이른바 `3+5` 회담. 프랑스경영자협회(MEDEF) 등 3개 사용자 단체와 노동총연맹(CGT)ㆍ민주노동총연맹(CFDT)ㆍ기독교노동총연맹(CFTC) 등 5개 노동 단체가 노사 문제는 정부 입김을 배제하고 자율로 해결하자고 합의한 것. 장 피에르 파울레트 CFDT 대변인은 “90년대 중반까지도 경영자가 대화에 소극적이면 정부에 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하지만 정부가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관여하다 보니 오히려 자율 해결을 가로막는 역작용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지난 96년 정부 `주5일제 법안`의 세부 규칙은 100페이지에 달할 정도였다고 한다. 베르나르드 기루 MEDEF 언론 담당 국장도 “정부가 노사 의견도 들어보지 않고 관련 법률을 추진하는 바람에 새로운 갈등 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즉 지난 `68년 혁명` 이후 정부가 입법이나 타협 종용 등을 통해 깊이 개입하는 게 관례였으나 효과가 떨어지는 데다 오히려 중앙 정부가 정치 파업의 표적이 되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것. 기루 국장이 모범 사례를 들고 있는 것은 바로 인접국인 독일. 독일의 경우 정부가 해고 및 파업 절차 등 큰 틀만 짜 놓았을 뿐 노사분쟁을 강제로 조정할 수 없다. 국내에서 노사 모두에게 불만 사항인 중재 절차조차 없다. 기본법 제9조 3항에 `노사 쌍방이 자율적으로 체결한 협약이 노동조건 및 경제조건을 규정하는 데 최우선 효력을 갖는다`고 못박아 놓은 것. 랄프 데브코스키 독일 경제노동성 전문위원은 “한국도 노사 갈등을 줄이려면 노동자와 경영자가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정부가 최대한 중립자 역할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불법 파업, 부당노동행위 등 각종 불법 행위에 대해 무원칙한 타협을 강요, 오히려 노사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는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귀담아야 들어야 할 대목이다. [인터뷰] 데루제트 CFDT 사무국장 "노조 전임자임금 자체회비로 충당해야" “노조 전임자의 임금이나 단체 운영비는 노조원 자율로, 즉 자체 회비로 충당해야 한다. 이를 정부나 기업체에 의존하면 노조의 독립성이 손상할 염려가 있다” 마크 데루제트 CFDT 국제담당 사무국장은 “특정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으나 이는 MEDEF도 똑 같은 차원에서 받고 있다”며 “CFDT로 파견 나온 노조 간부의 경우 개별 기업에서 임금을 받기는 하나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소액”이라고 강조했다. - 프랑스도 노동시장 유연성 요구가 커지고 있다. ▲회사가 경쟁력을 잃고 망하면 노동자만 불리하다. 노조도 생산성 향상 등 회사 발전을 위해 경영진과 머리도 맞대고 회의도 연다. 하지만 해고 때는 재취업 알선 등 사회안전망을 갖추고 노동 관련 법률을 만들 때는 노동자와 타협해야 한다. 일방적이서는 곤란하다. - CFDT의 역할은 무엇인가. ▲ 중개 역할이다. 기업주들이 원하는 방향을 모두 무시할 수는 없다. 노동자들은 항상 이기주의에 빠지기 쉽고 때로는 노조가 기업주와 유착하기도 한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중간에서 MEDEF와 함께 공정하게 갈등을 완화시키려고 노력한다. - 한국에서는 아직도 경영진 폭행이나 공장 점거 등이 많다. ▲ 프랑스에서도 60년대에는 그런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협상하는 방법을 배웠다. 기업과 노동자가 서로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자기 주장만 고집하면 갈등이 커지고 과격해진다. - 프랑스도 기업들이 해외 이전이 늘고 있는데. ▲ 경영진이 외국에 투자하면 처음에는 손해보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회사가 성장하면 자국내 노동자들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최근 노동시장 시각 전환] 기업이익 위해선 수시 구조조정도 프랑스는 최근 노동시장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있다. 프랑스 헌법원은 2002년초 해고 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사회현대화법 제 107조`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해고 사유를 너무 엄격하게 하면 기업들이 탄력적으로 생존기반을 찾는데 제약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같은 결정의 배경이다. 기루 국장은 이에 대해 “수시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회사가 망해 노동자 모두가 일자리를 잃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크 데루제트 CFDT 국제담당 사무국장도 “기업 이익을 위해 해고는 불가피하다”며 “다만 CFDT 입장은 그 규모를 최소화하고 재취업에 대해 정부와 회사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해고와 관련된 사안들은 어느 사회에서건 감히 입밖에 내기조차 어려운 예민한 부분. 프랑스의 이 결정은 한마디로 곪아 터져서 생명을 위협받는 것보다는 가지치기를 통해 건강과 수명을 유지하는 것이 백번 낫다는 사회적 합의다. 한국에는 `노동자의 낙원`, `파업 천국`으로 알려졌던 프랑스. 하지만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경제 발전과 완전고용 실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었다. <특별취재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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