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스러운 아파트와 매끈한 유리로 장식된 고층빌딩. 서울이 자랑하고 싶어하는 도시의 외형이다. 건물이 완성되기 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도심은 상처를 드러낸 채 울부짖는 폐허에 불과하다. 보이는 풍경의 이면에 감춰진 모습을 디지털카메라에 담아온 강홍구 씨가 로댕갤러리 초청으로 개인전 '강홍구:풍경과 놀다'를 열고 있다. 지난 10년간의 작품 40여 점을 걸어놓은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63빌딩이 등장하는 엽서사진과 화염에 뒤덮인 채 추락하는 폭격기를 찍은 사진을 합성한 초기작 '전쟁의 공포'는 9ㆍ11테러를 떠오르게 한다. 실제 테러가 발생하기 5년 전에 제작한 이 작품은 전쟁에 대한 인간의 심리적 공포가 작가의 상상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디지털카메라가 대중에게 선보인 지 얼마되지 않은 90년대 중반. 카메라의 용량이 부족해 작가는 여러 사진을 이어 붙여 긴 파노라마의 풍광을 만들어냈다. 풍경은 같은 장소를 조각조각 이어 붙여 일그러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실제 눈에 보이는 풍경이 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보는 각도와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며 "당시 디지털카메라의 기술적 한계로 사진을 조각조각 이어 붙였는데 해 놓고 보니 파편이 모여야 한 장의 풍경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2004년 이후 최근 작에 등장하는 도시는 더욱 을씨년스럽다. 그는 집이 더 이상 사람이 사는 주거 공간이 아니라 투기와 유랑의 장소가 된 것에 포커스를 맞췄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와 구성이 같은 '그린벨트-세한도(歲寒圖)'는 선비의 쓸쓸한 유배생활 대신 도시의 일그러지고 초췌한 풍경을 앵글에 담았다. 아파트 건설을 앞둔 불광동 재개발지역을 담은 '미키네 집'과 '수련자'는 이사가면서 제일 먼저 버리는 아이들의 장난감을 이용, 부서진 도시를 초현실적으로 표현했다. 컴퓨터 게임 '철권'의 주인공 캐릭터를 이용한 수련자 시리즈는 무협지에 나오는 각종 권법을 인형으로 연출했다. 폐허가 된 중원에서 맞수를 찾는 고수가 된 인형이 작가 특유의 감각과 위트로 다시 살아났다. 작가는 "무협지에 나오는 동작이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카메라의 정지된 동작에서는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작품을 하면서 합성과 연출이 가능한 디지털 카메라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6일까지 (02)2014-6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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