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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 여풍(女風)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하지만 금융업은 전통적으로 여성에 척박한 업권으로 분류된다. 시중은행 전체를 통틀어 여성 임원 숫자는 5명에 불과하다. 두터운 유리천장이 여성 금융인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셈이다.
한국씨티은행의 '여성 3인방'이라 불리는 김명옥 업무지원본부 부행장과 김정원 재무기획그룹 부행장, 유명순 기업금융상품본부 부행장은 이런 환경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새 정권에서 여성 금융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좌표 역할을 한다.
김명옥 부행장은 지난 2000년 서울은행에서 부행장으로 발탁∙영입돼 '국내 금융계 최초 여성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지금도 여성 행원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롤모델로 꼽히며 든든한 멘토 역할을 수행한다. 김명옥 부행장은 "'최초 여성 임원'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책임감이 오히려 훨씬 크다"면서도 "수많은 여성 행원이 저를 보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고 웃음을 지었다.
국내 시중은행보다는 조금 더 개방적인 분위기인 한국씨티 내부에서조차도 김정원 부행장과 유명순 부행장의 발탁은 파격에 가까웠다.
김정원 부행장은 미국 본사에서 파견한 외국인 남성이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는다는 관례를 깨고 지난해 10월 재무그룹기획장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유명순 부행장은 여성들이 대체적으로 선호하는 후선업무 대신 기업심사, 다국적기업 영업, 기업금융 상품 등과 같은 일선업무에서 남성들과 경쟁해 임원자리까지 꿰차는 저력을 보여줬다.
세 명의 여성 부행장이 걸어온 이력은 조금씩 달라도 그들이 말하는 성공비결은 공통점이 있다. "남성과 똑같은 성공전략을 택하기보다는 여성만의 강점을 백분 활용하라는 것"이다.
"흔히 여성들은 워크(Work)는 잘하는데 네트워크는 약하다고 하잖아요. 처음에 기업영업을 나가면 남성들과 똑같이 술을 마시고 접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강했어요. 그런데 여기에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꼼꼼함을 앞세워 고객의 니즈를 먼저 파악해 고객 감동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죠."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기업심사나 영업 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유명순 부행장이 전하는 성공 노하우다.
김정원 부행장은 여성들의 강점으로 '공감능력과 소통'을 꼽았다.
"업무 스타일을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ABC로 말할 수 있어요. 숫자를 다루는 만큼 정확(Accurate)하고 간결(Brief)하면서 투명(Clear)한 것이 생명이죠. 더불어 여성들 특유의 공감능력과 소통능력은 금융업무에서 꼭 필요한 역량이에요. 윗선은 물론이고 실무자들과 항상 소통하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업무에 즉시 반영하고 서로 다른 업무 간에 조율을 이끌어낼 수 있어요."
세 부행장들은 항상 남성과 동등한 선에서 경쟁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김명옥 부행장은 "여성이라고 봐주거나 우대해주지 않는다"며 "업무 현장에서는 성별의 차이를 스스로 마음속에서 지워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금융계를 이끄는 '파워 여성'들이지만 여타 워킹맘들처럼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했다.
유명순 부행장은 17년 전 둘째 아이를 출산한 직후 회사에 복귀하며 7~8개월 동안은 "등에 아이를 업고 출근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했다. 김명옥 부행장은 여성들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며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족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맞벌이 여성들이 아직도 과도한 육아와 가사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며 "온 가족이 똘똘 뭉쳐 고통을 분담해야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성공하는 여성 숫자가 늘어난다"며 소신을 밝혔다.
한국씨티 여성 3인방의 소망은 본인들처럼 더 많은 금융계에 더 많은 여성 임원들이 배출되는 것이다.
김정원 부행장은 "여성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한다"며 "기회가 왔을 때 과감하게 나설 수 있는 도전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금융계 최고 경영자들의 인식전환도 함께 당부했다. 김명옥 부행장은 "실력대로 기회를 줬다면 수많은 여성 인재들이 금융계 전면에서 활약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성별이 아닌 실력대로 여행원들을 평가해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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