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보험사에 대한 자본건전성 강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변동성이 극심해진 글로벌 금융환경, 여기에 저금리 장기화의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는 보험산업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금융 당국이 건전성 강화정책의 방점을 '규제'가 아닌 '생존'에 찍혀 있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같은 흐름에서다.
문제는 양극화다. 시장지배력이 높은 대형 보험사나 자본여력이 넉넉한 외국계보험사의 경우 자본규제의 덫에서 자유롭다. 그러나 저금리ㆍ저성장의 올가미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중소형 보험사는 다르다. 세법개정안에 따른 상대적 소외, 저금리 기조에 따른 자산운용 이익률 하락, 여기에 자본확충이라는 숙제가 더 늘었다. KB생명이 2,000억원대의 대규모 유상증자에 나서는 것이 주목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한 자본확충과 인수합병(M&A)의 서곡이라는 뜻이다.
◇생존 시험대 선 중소형 보험사=금융 당국은 지난해 말부터 보험사들에 지급보증비율(RBC)을 200%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말 그대로 권고여서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수년 간 이어져온 금융 당국의 건전성 강화기조를 감안할 때 이를 무시할 수 있는 보험사는 없다.
자본확충 방안은 ▦증자 ▦배당 ▦손익조정 등 크게 세 가지다. KB생명은 유상증자를 택했다. KB금융의 경우 당초 ING생명을 인수해 RBC비율 숙제를 풀려고 했다. ING생명의 RBC비율은 380%로 금융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크게 웃돈다. ING생명의 RBC비율을 250% 수준으로만 낮추면 가이드라인을 위배하지 않으면서 현금 7,500억원을 확보하게 된다. KB금융은 이 현금을 KB생명의 유상증자 재원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헌데 ING 인수가 불발되면서 이 계획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업계에서는 KB생명의 유상증자 단행은 업계의 첫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다. 현재 생보사 중에서는 KB생명과 BNP파리바카디프(171%), 현대라이프(199%) 등이 금융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밑돈다. 이들은 업계 하위권 생보사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이 중 현대라이프는 지난해 11월 1,000억원 규모의 유증을 이미 실시해 RBC비율을 권고안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손보업계는 RBC비율 미충족 즐비=손보업계는 사정이 좀 다르다. 삼성화재(436%), 동부화재(255%), 현대해상(215%) 등 '빅3'만이 RBC 규제의 안전지대에 있을 뿐 다음 순위의 손보사들은 어떻게든 자본을 확충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있다.
업계 4~5인 LIG손해보험(183%), 메리츠화재(173%)를 비롯해 한화손보(168%), 롯데손보(149%), 흥국화재(167%), 교보악사(190%), 다음다이렉트(160%) 등도 금융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밑돈다. 이익규모가 큰 2위권 보험사는 배당이나 손익조정을 통해 RBC비율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보이지만 일부 하위권사는 증자가 예상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을 소폭 밑도는 보험사는 손익 조정을 통해 RBC비율을 끌어올릴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보험사는 유상증자나 배당확충 등을 통해 자본을 늘려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소형 보험사, 저금리로 생존 불투명=수익성 하락은 중소형 보험사들의 생존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자본규제는 손익조정이나 증자, 배당확대 등을 통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지만 저금리 여파에 따른 수익성 하락은 극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실적에 적신호가 켜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2회계연도 상반기(2012년4~9월) 현재 KB생명ㆍ현대라이프ㆍ하나HSBC생명은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우리아비바생명은 1년 전에 비해 순익이 81%나 급감했다. 이들은 수입보험료가 1조원 이하인 소형생보사다.
한 소형보험사 관계자는 "연초 시행된 세법개정안의 수혜는 대형보험사들만이 누리고 있는데 이러한 양극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건전성 강화조치는 자본여력이 뒤처지는 중소형보험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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