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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참을 수 없는 정당의 가벼움
입력1999-10-25 00:00:00
수정
1999.10.25 00:00:00
몇십년후 20세기 후반 한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더욱 골치아플 것같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50여년 남짓한 기간동안 명멸(名滅)해간 주요 정당만 놓고 봐도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한민당·자유당·민주당·공화당·민정당·평민당·다시 민주당과 공화당·민자당·국민회의·한나라당 등등.선거때마다 당명(黨名)이 바뀌며 새 당이 만들어지고, 당의 이념이나 정강정책은 더욱 애매해지곤 한다. 어떤 정체성(正體性)에 따라 당이 구성되는지는 아예 알아볼 수 없다. 굳이 정체성을 따지자면 여당(與黨)과 야당(野黨)의 구별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나마 DJ정부 이전에는 정권교체가 절실하게 요구됐었다는 점에서 야당과 야당을 고집해온 사람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대우가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여야의 차별성마저 없어진 것같다.
한국의 정치역사에서 정당이란 실체가 제 기능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여당에 몰려갔던 사람들은 정권교체라는게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던 상황에서 집권당이라는 프리미엄을 노린 것이고 야당의 이합집산도 정당의 이념보다는 보스를 따라, 또는 금배지를 달기 쉬운 지역정서를 겨냥해 이뤄진 것이었을 뿐이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의 당론(黨論)이란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한나라당은 지난 21일 당론을 어겼다며 소속의원 2명을 제명처분했다. 동티모르 파병동의안 표결과 노사정위 표결에서 당론과 달리 찬성표를 던졌다는 이유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은 지난 22일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 해임건의안이 부결되자 『의원들의 정치생명을 담보삼아 집중 위협과 회유를 가한 결과』라며 여당의원의 반란표가 없었던 것을 비난했다.
이쯤되면 한국의 정당이란게 총선을 편리하게 치르기 위한 패거리들의 모임에 불과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각계각층의 유능하다는 인재들이 정당에 편입돼 금배지만 달면 자기 목소리는 없어지고 정쟁(政爭)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예외없이 각종 신당창당설이 떠돌고 있다. 창당의 목적은 예나 다름없이 조건없는 의석 확보다. 수혈(輸血)대상자의 혈액형이나 건강여부는 묻지않고 당선가능성만 따지고 있다. 또다시 그럴듯한 이름의 정당이 나타나면서 한국 정당사(政黨史)만 더 복잡해질 것같다.
지금은 정당이란 존재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걸림돌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차라리 당분간 정당민주주의를 포기하는게 나을 성싶다.
국제부 李世正차장BOB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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