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중앙은행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정도다.
한국은행이 5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묶어두고 있지만 시장금리는 최저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대출금리는 사상최저치를 기록했고 저축성 수신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아졌다. 한은이 결정권을 쥔 정책금리와 시장금리의 괴리가 너무 크다 보니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이 더 이상 시장에 시그널을 주기 어렵다는 회의론에만 힘이 실리고 있다.
'기준금리'가 '무늬만 기준'인 결과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2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3년 3월 중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3월 예금은행의 대출금리(신규 취급액 기준)는 연 4.77%로 전월 대비 0.14%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1996년 대출금리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사상최저치다.
기업대출 금리는 4.86%로 0.17%포인트 하락했다. 대기업(4.57%), 중소기업(5.02%) 모두 최저치였다. 가계대출 금리도 4.55%로 2012년 12월(4.54%)을 제외하면 가장 많이 내려갔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처음 4%대 아래(3.97%)로 떨어졌다.
수신금리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저축성 수신금리는 2.87%로 전월 대비 0.07%포인트 하락했다. 초유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전격적인 기준금리 인하로 저축성 수신금리가 2.84%까지 내려앉았던 2009년 5월 이후 3년 10개월 만에 최저치다. 정기예금 금리는 2.85%, 정기적금 금리는 3.39%까지 내렸다.
이주영 한은 금융통계팀 과장은 "국고채, 양도성예금증서(CD) 등 시장금리가 하락하고 은행 간 기업대출 경쟁 등에 금리가 낮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상 최저치 금리기록을 보는 전문가들의 평가는 훨씬 심각하다.
돈의 수급상황을 반영하는 '금리'라는 메커니즘이 망가진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경기가 내려앉는 상황에서 갈 곳을 못 찾는 시중자금의 단기부동화 현상만 장기화되고 있다. 정상적인 금융시장이라면 금리가 낮아지는 것이 차입 수요자들에게는 좋은 신호임에도 불구하고 불투명한 경기전망으로 인해 돈을 빌리지 않는 것이다.
금리결정권, 즉 '수도꼭지'를 쥔 한은의 입지도 좁아질 대로 좁아졌다. 최저치 금리를 경신하는 상황에서 한은이 뒤늦게 금리인하를 한다고 해도 시장에 미칠 파급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시장이 중앙은행을 믿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중금리가 먼저 낮아져버려 이제는 한은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낮출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저금리에도 갖다 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경기부진의 장기화로 접어들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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