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속편이 아니건만 영화 ‘콘스탄틴’은 자연스레 ‘매트릭스’를 떠올리게 한다. 시커먼 선글라스를 쓰고 무표정한 얼굴로 기계로 조종되는 인류를 구원하던 ‘네오’는 여전히 ‘존 콘스탄틴’으로 이름만 달리한 채 악의 세계에서 인간의 영혼을 구한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 보면 똑같지 만은 않다. ‘매트릭스’의 ‘네오’는 어찌 됐든 멋들어진 구원자였지만 ‘콘스탄틴’은 동정심이 일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다. 태어날 때부터 천사와 악마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콘스탄틴. 하지만 자신의 능력이 저주스러울 뿐이다.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가 얻은 건 영혼의 평화가 아닌 2분간의 지옥 견학. 생이 끝나면 자신이 갈 곳은 지옥 뿐이라는 걸 깨달은 콘스탄틴은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고픈 욕심만으로 어쩔 수 없이 악마들과 싸워 나간다. 유치할 정도로 선과 악이 확연히 구분되는 여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는 달리 이 영화에선 선과 악의 균형이 깨져 간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는 이미 ‘매트릭스’에서 세 번씩이나 구현된 경험이 있다. 새롭지도 파격적이지도 않다. 다양한 악마들의 향연에 더욱 눈길이 간다. 성수(聖水) 한 방에 악마가 날아가 버리는 모습이나 코가 문드러진 악마가 그들. 여기에 발만 물 속에 담그고 있으면 빠져드는 지옥의 생생한 묘사는 컴퓨터 그래픽의 힘을 실감케 한다. 그러나 ‘나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깊이 있는 존재론에 녹아 들었던 ‘매트릭스’와는 달리 영화 중간중간 치고 나오는 대사들은 마치 백치미 가득한 미인을 만난 듯한 아득함 마저 들게 한다. 선과 악의 균형이 무너진 세계 속에서 그들은 “우리 모두 신의 장난감“임을 깨닫고 만다. 콘스탄틴의 고통 앞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공포 앞에서 너희들이 경건 해져야 하는 게 고통을 주는 이유”라고 말할 때 쯤이면 극장이 아닌 교회를 찾고 싶어 지게까지 한다. 차라리 색다른 재미는 콘스탄틴이 물고 있는 담배. 불 붙은 담배가 마치 악의 화신인 양 묘사하는 영화는 미국인의 담배 혐오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영화의 주제가 ‘금연합시다’가 아닌 지 의심스럽게 한다. 아무리 담배가 백해무익하다지만 이것으로 악의 세계를 표현하는 건 영화의 약한 메시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설 특수에 맞춰 미국보다도 열흘이나 빠른 8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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