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위상 약화가 우려돼온 위기관리회의에 기획재정부가 다시 힘을 불어넣고 있다. 앞으로 연간 500억원 이상의 사업비가 소요되는 정부 사업은 반드시 위기관리회의를 거쳐야 예산을 배정 받을 수 있도록 추진한 것이다. 위기관리회의는 박재완 재정부 장관이 주재한다. 따라서 재정부와 상의하지 않고는 어떤 부처나 공공기관도 마구잡이로 대규모 재정사업을 벌이지 못하도록 돈줄을 쥐게 된 셈이다.
이를 놓고 관가에서는 정권 말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경제 사령탑 기능을 대통령 측근인 박재완 장관이 다시 추스르려 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사실 재정부 장관은 법적으로 이미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다. 정부조직법은 제23조에서 재정부 장관이 재정정책을 조정하고 예산ㆍ기금의 편성ㆍ집행ㆍ성과관리 등을 관장하도록 명시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한때 부총리급이었던 재정부 장관은 현재 여느 장관과 마찬가지 직급으로 강등(?)돼 '계급장'으로 다른 부처를 조율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과천 관가의 한 고위관계자는 "부총리급이던 시절에는 재정사업뿐 아니라 경제 관련 법률을 만드는 작업까지도 반드시 재정부 장관을 거쳐야 국무회의에 상정할 수 있었다"며 "지금은 재정부 장관이 주재하는 위기관리회의를 거치지 않고도 국무총리나 청와대 관련 회의에서 직접 부처 장관들이 '자기 장사(?)'를 할 수 있어 재정부 아쉬운 줄 모른다"고 전했다.
국토해양부ㆍ지식경제부 장관이나 금융위원장 등 힘 있는 경제부처의 수장들이 위기관리회의에 개근하는 모습을 보기 힘든 점도 예전 같지 않은 재정부의 위상을 시사한다.
재정부가 연간 사업 500억원 이상의 예산사업은 위기관리회의를 거치도록 사실상 의무화하는 이유도 느슨해진 정책 조율력을 회복하겠다는 차원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단순히 재정부가 다른 부처를 밀어붙이겠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위기관리회의로 조율된 사업에 대해서는 재정부가 책임지고 예산을 따주겠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재정부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다시 격상시키는 것을 청와대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요즘처럼 북한ㆍ이란 리스크, 국내 총선ㆍ대선에 따른 정치 리스크 등 비경제적 요인까지 섭렵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나 총리가 경제문제까지 총괄하기에는 물리적으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문제는 경제부총리에게 일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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