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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은 지난해 5월4일을 뼈아픈 날로 기억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금감원을 예고 없이 전격 방문했던 날이다. 이 대통령은 금감원 주요 임원들의 면전에서 부산저축은행 부실감독에 대해 평소와 달리 강한 어조로 질타하고 금융감독 당국에 대한 불신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권혁세 금감원장이 급조해 보고한 감독당국 쇄신방안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금감원이 지난 1999년 통합 출범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3개월 뒤 국무총리실이 전격 발표한 금융감독 혁신방안은 핵심은 피한 채 변죽만 울렸다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전면적인 금융감독체제 개편을 위해서는 또다시 차기 정부까지 기다려야 하는 '5년짜리 도돌이표'가 시작된 것이다.
◇저축은행 구조조정 겪으며 만신창이=예상대로 정권말이 되자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마침 저축은행 구조조정 사태로 금융감독 당국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태라 차기 정권에서 감독체계 개편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현체계에서는 내부 통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정치권과 업계로부터의 독립성도 떨어진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전문가들 역시 세부내용을 놓고 갑론을박하고 있지만 국제통화기금(IMF) 당시 만들어진 금융감독체계가 구조적 한계를 가진 만큼 이번 기회에 감독체제를 전면 재구성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윤석현 숭실대 교수는 "저축은행 사태는 사실상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의 실패로 초래된 것"이라며 "금융감독체계 개편만으로 금융산업 선진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분명한 것은 금융감독체계 개편 없이는 금융감독은 물론 금융산업 선진화도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기구 어떻게 변해왔나=금융감독체계는 1997년 '금융감독기구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출범한 후 크고 작은 사건과 맞물리며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2000년에는 상호신용금고 부정대출로 진승현ㆍ정현준 게이트가 발생하자 기획예산처 주도로 금융감독조직혁신작업반이 구성돼 금감위와 금감원을 민관합동 단일기구로 통합하는 개편안이 검토됐다. 개편안은 심의과정에서의 논란 끝에 무산됐다. 2003년 카드사태로 홍역을 치른 뒤에는 감사원 감사에 대한 대응조치로 정부혁신위원회가 재정경제부ㆍ금융감독위원회ㆍ금융감독원의 역할분담을 다시 한번 교통정리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인수위원회를 통해 재경부 금융정책국과 금감위를 통합, 금융위원회를 설치했다. 금융산업정책과 감독정책을 모두 금융위원회에 맡긴 것이다. 이와 동시에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의 겸직을 분리했다. 수장이 둘로 나뉘면서 두 기관의 엇박자가 더 잦아졌다는 지적이 나오게 된 것은 이 대목 때문이다.
◇이번에도 정치권 외풍 부나=최근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게 '쌍봉형(twin-peaks) 감독체계'다. 금융건전성감독원과 금융시장감독원을 분리해 건전성 감독과 행위규제ㆍ소비자보호 기능을 따로 맡겨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금융감독체계를 제대로 바꾸려면 무엇을 어디로 떼내고 합칠지보다 우리나라 금융감독의 구조적 문제점을 좀 더 밀도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장의 구조적 변화, 거시정책과의 공조, 국제적 정책 노력,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탄력적 감독, 소비자 보호 등을 큰 그림 안에서 전반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권이 갈릴 때마다 금융감독체계가 바뀌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그러다 보니 감독당국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고 정치권 로비의 창구가 될 공산이 커지기 때문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의 경우 우리나라와 달리 금융회사들이 금융감독체계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며 "금융감독체계의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돼야 피감독기관으로부터 권위를 인정받고 원칙을 고수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위원회는 오는 9월 프레스센터로 이전할 계획이다. 금융위가 금감원과 떨어져나가는 것은 2008년 서초동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정권말 부처이전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가 이사를 강행하는 것은 결국 차기 정부의 부처개편에서 위상을 강화하려는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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