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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산업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은행ㆍ증권 등과는 다른 특화된 자산운용으로 전문성을 인정 받아왔던 보험업이 규제 강화, 저금리 환경 도래 등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보험사로서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표현이 무리가 아니다.
한마디로 보험 산업 전반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그렇다고 온실 속 화초처럼 당국이 뿌려주는 물줄기만 기다릴 수도 없는 일. 금융시장의 경쟁이 갈수록 첨예화되면서 보험사들도 보호ㆍ육성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자생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능동적인 자세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에 서울경제신문은 위기 국면에 들어선 보험사의 현 상황을 시리즈로 점검한다.
최근 교보생명이 은행 창구에서 즉시연금 판매를 접었다.
즉시연금에 대한 과세 방침이 발표되면서 물들 듯이 밀려드는 자금을 감당하기 버겁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 교보생명의 즉시연금 판매 건수는 한달 300건 내외에서 과세가 발표된 지난 8월 무려 1,400건을 기록했다. 가뜩이나 저금리로 자금 운용에 부담을 느끼는 차에 당초 예상을 훨씬 웃도는 유입자금은 빅3로 분류되는 보험사마저 손을 들게끔 만들었다.
이런 현상은 세금을 필사적으로 피하려는 자금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반영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노후를 염려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단적으로 드러냈다고도 볼 수 있다.
경제민주화 바람 속에 부자 증세에 초점이 맞춰졌던 이번 세제개편안이 애꿎은 은퇴자를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감은 이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나온다.
이번 세제개편안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형국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즉시연금이 부자들의 세금 회피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은 인정하더라도 그런 부작용을 방지하는 당국의 카드 자체가 정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전략 담당 임원은 "미세한 수술 도구를 사용해 시장의 왜곡을 교정하면 될 일을 조세 당국이 나서 쇠몽둥이로 시장을 잡겠다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당장 세제개편으로 내년 즉시연금 가입자부터는 종신형의 경우 이자소득세(15.4%)를, 상속형은 연금소득세(5.5%)를 내야 한다.
하지만 즉시연금이 안정적인 노후 보장을 지원하고 재정 부담도 줄여주는 사회정책적인 순기능을 두루 갖추고 있음을 감안하면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는 즉시연금 가입자 분석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삼성ㆍ대한ㆍ교보 등 3개 생보사의 6월 말 기준 즉시연금의 금액 구간별 분포를 보면 1억원 이하가 55.60%, 1억~3억원이 27.66% 등으로 3억원까지 비중이 83%가 넘는다. 둘 중의 한 명 이상이 기천만원 수준의 가입자라는 뜻이다. 이는 즉시연금 가입금액 중 일정 부분까지는 비과세하고 그 이상에 대해서만 세금을 물리는 보완 대책이 국회에서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보험 업계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퇴직 연령인 53세부터 국민연금 수급 개시 전 60세까지 가교연금 역할을 하는 게 즉시연금"이라며 "금융자산의 연금화를 유도하는 차원에서라도 즉시연금에 대한 비과세는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도 인출형 보험에 대한 과세 방침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보험사로서는 팍팍한 영업 환경의 돌파구로서 다양한 소비자 니즈를 고려한 상품을 내놓아야 하는데 이번 과세 조치로 중도인출 및 수시 납입 기능을 가진 상품 판매가 무의미해지게 됐기 때문이다. 자칫 무리한 과세가 보험사의 선진 상품 개발 의지를 꺾는 결과로 나타날 여지도 있다.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월납 보험의 중도인출 제도는 급전이 필요한 고객이 보험을 유지하면서 자금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한 친서민제도인 만큼 비과세 유지가 필요하다"며 "과세가 상품 설계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방향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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