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결된 지 70여일이 지났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논쟁은 더욱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 쇠고기와 자동차 문제 해결 없이는 ‘의회비준 불가’라는 입장을 밝힌 데 이어 ‘개성공단’ 문제까지 들고 나온 가운데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역시 ‘국회비상시국회의’를 조직, 한미 FTA의 75개 조항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하겠다고 13일 밝혔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정부는 협정문 공개 뒤 불거진 주요 쟁점 86개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자료를 내놓았다. 한미 FTA를 둘러싼 2라운드가 본격화되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 “75개 항목 검증하겠다”=국회의원 65명은 이날 국회에서 ‘한미 FTA 졸속체결’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상품ㆍ농업 분야 등에서 의혹이 있는 75개 항목을 뽑아 “철저하게 검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원들은 전문가 60여명과 함께 한미 FTA 협정문을 분석한 결과 대다수의 합의사항이 미국 측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일종의 불평등한 협상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정부가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는 자동차ㆍ섬유 등 상품 분야에 대해서도 “긍정적 효과를 장담할 수 없고 오히려 비관세 장벽 분야의 독소조항과 미측의 요구 관철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또 보건의료 분야와 광우병 쇠고기, 유전자 변형 생물체(LMO) 등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사안들마저도 한미 FTA의 희생양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투자ㆍ금융서비스 분야를 비롯해 투자자-정부제소 조항(ISD)도 “정부의 정책결정권을 크게 훼손할 우려가 높은 독소조항이 모두 포함돼 더욱 우려를 깊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상시국회의는 75개 ‘우선 검증 과제’를 중심으로 청문회가 예정돼 있는 4개 상임위에서 철저한 검증 작업을 벌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미 FTA 관련 모든 상임위에서 대통령 서명 전에 추가로 청문회를 개최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정부, 86개 쟁점 조항 조목조목 반박=흘러가는 상황이 여의치 않자 정부 역시 그동안 산발적으로 밝힌 자료를 모두 모아 관련 쟁점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배기량 기준으로 돼 있는 자동차세제 완화 약속이 조세주권 포기라는 지적에 대해 정부는 “한미 FTA의 기본취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일축했다. 배기량 세제 관련 규정은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도 그동안 줄기차게 개선을 요구했던 사안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섬유 원사기준 등이 너무 엄격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에는 “대미 수출의 80% 이상이 특혜수혜를 볼 수 있다”고 반박했다. 또 미국 농산물에 대한 보조금 지급 문제 등은 협상에서 제외됐다는 의혹제기에 “국내 역시 농업보조금을 지급하는 만큼 정식협상의제로는 바람직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LMO 수입규제에 대한 사항은 섬유협상과 연계했다는 비판에 관해서는 “있을 수도 없고 그러한 바도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부속 서한을 통해 저작권 침해 콘텐츠를 배포ㆍ전송한 포털 등 인터넷사이트의 폐쇄를 약속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제3자의 불법복제나 전송을 허용한다 해서 자동적으로 인터넷사이트가 폐쇄된다는 것은 지나친 논리비약”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의약품의 허가-특허 연계제도 신설 부문에 대해서는 “제약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협정문과 불합치되지 않는 범위에서 업계의 부담을 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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