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가계 부채 문제가 급격하게 경제 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고 밝히고 한국은행까지 비상벨을 울린 데 이어 이번에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다 강한 톤으로 가계 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얘기했다.
저소득층의 가계 부채가 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경고문을 내놓은 것인데 소득 하위계층 가운데 부채에 취약한 가구는 평균보다 4배 많고 부실위험이 높은 부채 비율도 3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층일수록 빚 부담이 커 경기부진에 따른 충격에 취약한 만큼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열어둔 유동성 지원대책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영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5일 '가계 부문 부채상환여력의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저소득층 부채가구가 경기부진으로 인한 소득감소, 자산가격 하락 등 충격에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1분위(하위 20%)의 취약부채가구 비율은 13.48%로 전체 평균(3.28%)보다 4배 높고 부실위험부채 비율은 10.30%로 평균(3.13%)대비 3배 높았다. 보고서는 저소득층이 보유한 부채가 전체 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은 편이지만 부채상환여력이 취약한 가구 중 부실위험이 큰 부채를 보유한 가구가 많은 점이 문제라고 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의 주택가격 조정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도권 가구의 부채상환여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사자 지위별로는 중하위 소득구간에 속하는 자영업자의 취약 부채액 비율이 같은 구간의 임금근로자보다 높았다.
보고서는 재무여력과 순자산여력이 동시에 마이너스인 가구는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커 보유부채 중 자산을 초과하는 부분이 대출금융기관의 손실로 전가될 위험에 주목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특히 비은행금융기관의 경우 가계대출 증가세가 높고 해당 차입가구의 부실위험이 커 충격에 따른 손실위험이 비교적 높을 것으로 예상됐다.
보고서는 이에 따라 정부가 구조적인 가계부채 지원책도 갖춰야 하겠지만 이와 동시에 경기 하방 위험에 대응한 비상계획도 미리 만들어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가계부채 지원책의 경우 순자산여력이 큰 가구라도 자산유동성이 낮아 현금흐름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자산거래 활성화와 유동화를 위한 조세정책과 금융지원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비은행 금융기관의 경우 부실 가능성이 높은 만큼 차입자의 상환위험을 고려한 대출관행이 정착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거시경제의 하방 위험이 부각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한 비상계획도 필요하다고 KDI는 주문했다.
김 연구위원은 "경기 하강시 부실가구 수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 실태를 사전에 파악하고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다만 단기적 경기부양 목적의 금융규제 완화 등 임의적인 규제변경은 본연의 목적을 희석시키고 정책의 불확실성을 확대할 우려가 있으므로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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