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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미래산업 정문술사장] '반도체장비' 스타로

鄭사장은 18년간 중앙정보부에서 공무원생활을 하다 해직당했다. 방황하던 그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풍전기공이라는 전기부품회사를 맡아 사업을 시작했다. 착실하게 공무원생활을 하던 鄭사장은 당시 세상물정에 어두웠고 여기서 첫 실패를 경험했다.2년후인 83년 현재의 미래산업을 창업했다. 이때 그는 마음속으로 선배들과 다르게 경영을 해서 성공하겠다고 결심했다. 종업원은 이용대상이 아니고 섬겨야 할 대상이라는것. 큰 기업이 되는것보다 국가 산업발전에 도움이 되는 기술인력을 양성하겠다는것이 그것이다. 기술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그는 몸으로 뛰었다. 사업초기 사원들이 회사에서 기술개발에 몰두할때 鄭사장은 심부름꾼 역할을 자처했다. 제품개발에 필요한 부품, 사무용품, 심지어 걸래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품목을 적어 직접 구입해 조달했다. 『은행이나 우체국에 갈일 없냐』고 먼저 묻는게 일과가 됐다.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는 부천공장으로 다시 출근했다. 『영등포 열처리공장에서 일을 보고 난 후 시장으로 직행해 돼지고기나 닭을 직접 골라 튀김요리를 해달라고 주문합니다. 이것들과 튀김, 순대 등을 포니에 싣고 다시 출근할때의 기분은 아무도 모를겁니다.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공장으로 저녁에 다시 출근할때 차안에 가득차던 구수한 냄새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鄭사장은 지금도 그때를 잊지못하고 있다. 웨이퍼 검사장비 개발에 실패하고 이때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단계 쉬운 메모리테스트 핸들러 개발을 계획했을때 鄭사장은 태능에 있던 산업연구원을 찾아갔다. 당시 기계연구원 문인혁책임연구원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전세계 관련 특허정보를 달라고 요청했다. 나이 50세가 넘은 사장이 하도 사정을 하니 성심성의껏 도와줬다. 이때 각종 문헌정보와 기술자료를 검색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관련 기술을 가진 연구원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부탁했다. 이때 얻은 한뭉치의 자료 덕분에 미래산업은 세계각국에 수출을 하면서도 단 한건의 특허분쟁이 없는 업체가 됐다. 이후 鄭사장과 직원들은 밤낮없이 테스트핸들러 개발에 매달렸다. 일본업체들의 핸들러를 개조하거나 복제해봄으로써 일종의 모방학습도 마쳤다. 鄭사장은 복잡하고 다양한 자료들을 정리해 엔지니어들이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때 심정을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다』고 그는 회고하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자체개발한 3대를 납품했다. 이후 미래산업은 어느정도 안정괘도에 접어들었으나 鄭사장은 곧바로 다음목표를 정하고 실천에 들어갔다. 메모리테스터핸들러의 개발이 그것이다. 반도체를 각종 조건에서도 제대로 역할을 하는지 테스트하는 이 기계는 열역학에서부터 위치제어, 정밀모터활용, 컴퓨터프로그래밍까지 총망라된 것이었다. 열정밖에 없었지만 결국 이것도 해냈다. 이때 개발한 메모리테스트핸들러는 지금의 미래산업을 있게한 디딤돌이 됐다. 반도체관련사업은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한다. 끊임없이 연구개발하지 못하는 기업은 자연 도태된다.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정사장에게 잘 어울리는 분야다. 올 2월에는 새롭게 미국 반도체 장비전시회에서 새롭게 선보인 칩마운터를 미국 퀴드사에 대량납품하는 개가를 올렸다. 테스터핸들러 매출이 정체를 보이기도 전에 미래를 대비해 새롭게 개발한 제품이다. 미래산업은 92년 매출 30억원에서 95년 318억원, 96년 454억원, 97년에는 615억원으로 늘어나는 고속성장을 이루게 됐다.상장회사 중 3년연속 매출액 대비 당기 순이익이 30%이상을 기록하는 신화도 남기게 됐다. 鄭사장은 회사돈을 개인적인 용도로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의 사장들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지금도 천안공장을 찾아가면 커피를 뽑아주는 여직원에게 별도의 커피값을 지불하고 있다. 심지어는 외부로부터 鄭사장 앞으로 들어오는 선물도 회사에서 나눠준다. 그 선물이 개인에게 온 것이라기보다는 미래산업 사장이라는 직함을 보고 온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鄭사장의 이러한 지독한 결벽증은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인 직원들의 신뢰를 얻는 바탕이 되었다. 『열심히 하면 빼가는 사람없이 나에게 결과가 돌아온다』는 믿음을 직원들이 가지게 된것도 鄭사장의 결벽증 때문이다. 그러나 鄭사장은 회사를 위해서 쓰이는 돈은 절대 아끼는 법이 없다. 종업원, 특히 기술자들이 마음대로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도록 했다. 값비싼 소프트웨어나 연구장비를 들여와도 전혀 문제삼지 않았고 심지어는 개발비를 통제하려는 임원을 해고한 사례까지 있다. 鄭사장은 『돌이켜보면 연구개발하는 재미로 사업했다. 연구개발비 구하러 다니느라 세월다보냈다』회고하고 있다. 연구개발에 대한 이러한 집착은 현재 미래산업의 직원구성을 보면 알 수 있다. 총 320명의 직원 중 연구원이 120명에 달한다. 이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것이 가족을 절대 회사에 못오게 하는 것이다. 막내며느리가 시아버지 회사를 보여달라고 사정했을때도 눈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아들·딸들도 회사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 두 사위가 실직해 오갈때가 없었을 때도 취업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남들은 지독하다고 하겠지만 같이 생활하는 직원들이나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鄭사장을 가르켜 『수수하고 친근한 것이 마치 옆집 아저씨같다』고 말한다. 지금이야 년간 순이익만 100억원을 벌어들이는 회사가 됐지만 미래산업이 어려웠던 시절에도 직원들 월급은 항상 제때 줄려고 노력했다. 사업이 어려워 자살을 결심했던 때도 금붙이를 팔아가며 직원들의 월급을 챙겼다. 鄭사장은 최근들어 엔지니어들이 창업에 성공해 사회적으로 칭송받는 벤처기업인이 많아지는데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주가가 올라 수백억대의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후배 벤처기업인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자만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사업에서 일순간 성공했다가 자만에 빠져 한눈을 팔거나 하면 나락의 구렁텅이로 떨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鄭사장은 자신의 살아온 과정을 담담하게 회고한 「나는 마흔셋에 시작했습니다. 왜 벌써 절망합니까」란 책을 펴내 화제가 됐다. 그는 이 책 서문에서 『나이 오십이 되기까지는 일방적으로 국가와 사회,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오십이 넘어서면 밥값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적고 있다. 정맹호기자MHJE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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