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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가격 결정권이 기업에서 정부로 넘어가는 상황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 신용카드 우대수수료를 정부에서 정하도록 하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국회에서 통과된 것이다. 오는 4월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의 이른바 '여론몰이 법안'이 결국 국회의 문을 넘어선 것인데 시장경제의 존립을 흔든다는 점에서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된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당장 수수료 인하에 따른 수익률 감소를 우려할 수 있지만 이는 극히 미시적 문제일 뿐이다. 금융당국이 관치를 넘어 아예 '법치 가격'이 만들어지고 이는 수요와 공급의 기본 원리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이 헌법소송 등 장기간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뒤통수 맞은 정부와 기업들=27일 국회가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정부와 기업들은 안심을 하고 있었다. 온통 관심은 '저축은행 피해자 특별 구제법'에만 모아져 있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이날 법사위에 출석, "정부가 가격을 정하는 사례는 최초"라고 우려를 표시했지만 내심으로는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정부와 카드사들은 법사위 직전까지만 해도 '카드사가 영세 가맹점에 대해 수수료를 우대해야 한다'고 강제성을 띤 표현을 '우대할 수 있다'로, '우대수수료 수준은 금융위가 정한다'는 대목은 '업계가 자율적으로 정한다'는 식으로 수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국회 내부의 분위기도 그렇게 흘러갔다.
이날 국회에서 통과된 법은 이를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국회 본회의가 이날 통과시킨 법안은 '신용카드업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하의 영세 가맹점에 대해 금융위가 정하는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신전문금융협회 관계자는 "여전법 개정안이 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일정 부분 수정될 것으로 알았으나 (원안대로 통과되자) 당혹스럽다"면서 "본회의를 통과한 만큼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카드업계의 한 최고경영자(CEO)도 "완전히 폭탄을 맞았다.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 맞았다"고 했고 정부 당국자들도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카드사들 헌법 소원 나설 것=그간 각 카드사는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즉각 헌법소원을 내겠다는 뜻을 견지해왔다. 이미 일부 법률회사를 통해 개정안에 대한 법률검토까지 마쳤다. 카드사들은 이번 개정안이 카드사와 가맹점이 갖는 계약 체결권의 핵심사항을 제한함으로써 헌법이 보장한 (카드사의) 재산권과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또한 금융위가 아무런 제한 없이 우대수수료율을 결정하도록 명시하고 있어 헌법상 위임의 원칙에도 위반된다고 여신업계는 보고 있다. 카드사들은 개정안이 발효되면 자율경쟁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고 보고 조만간 연쇄모임을 연 뒤 단계별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금융위도 여전법 개정안의 국회 정무위 통과를 전후로 정부가 민간기업의 가격을 강제하는 것은 시장경제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반대입장을 밝혀왔다.
금융위 관계자는 "위헌소지가 있는 일부 문구가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법사위를 통과해 정부 입장에서도 당황스럽다"며 "여전법 개정안대로 금융위가 수수료율 결정을 실행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전했다.
◇영세 가맹업자 1%대 후반~2% 수준으로=여전법 개정안은 공포 후 9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적용된다. 이에 따라 이르면 오는 12월부터 정부가 정하는 가맹점 수수료율을 적용하게 된다. 법은 구체적인 수수료율을 금융위가 정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당국은 영세가맹업자들이 우월적 지위를 지닌 업주에 비해 차별을 받지 않도록 수수료율을 정해야 한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수수료율을 정할 때 특정 범주(레인지)를 설정할 수 있느냐인데 정치권에서는 시행령에서 범주를 정하면 또 다른 차별을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에 매출액 등에 따라 특정 수수료율을 못박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현재 카드 수수료율은 영세가맹업자의 경우 최대 4%대 중반까지 책정돼 있다. 우제창 민주당 의원은 "최고 4.5%인 수수료율이 1% 후반에서 2% 초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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