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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주력산업 활로를 찾는다] <하> 산업혁신 가로막는 이상한 정부 규제

"기업 위기 땐 좋은 규제도 역효과… 경영활동 숨통 터줘야"

현 정부는 출범 이후부터 기업을 옥죄는 각종 규제를 타파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나섰으나 산업 현장에서는 성장을 가로막는 낡은 법안이나 규제가 여전하다는 불만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투자 늘린다는 기업소득환류세 실효성 의문
사내하도급 등 노동문제 못 풀고 되레 강화
휴대폰 재활용 부과금도 시장흐름 반영 못해
정부 맞춤형 지원으로 기업들 투자 유도를


박근혜 정부는 출범과 더불어 규제개혁을 통한 경제혁신을 기치로 내걸었다. 청와대로 기업인들을 불러 끝장토론까지 열었다.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양한 '손톱 밑 가시'가 해소돼 기업들의 투자 애로 사항이 개선됐다.

하지만 정작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인 전자·자동차·철강·조선업계 등 제조업 분야에서는 "정부의 규제개혁 드라이브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도리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이상한 규제가 생겨났다는 비판도 있다. 대부분 기업의 투자를 촉진시키겠다며 정부가 의욕적으로 도입한 규제들이다. 초(秒) 단위로 변동하는 산업계의 혁신을 기업이 따라잡지 못한 낡은 규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규제에도 타이밍이 있는데 지금처럼 제조업이 내우외환으로 시달리는 시기에는 아무리 좋은 취지의 규제라도 역효과를 부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규제완화의 틀을 원점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재계가 지적하는 제조업 규제를 유형별로 정리했다.

①실효성 없는 이상한 규제=재계는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과세해 금고를 열게 하겠다는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대표적인 이상한 규제로 꼽고 있다. 기업의 자율적인 경영활동을 방해해 오히려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 자체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나온다. 자산 규모가 큰 기업들은 세금을 물지 않는 반면 작은 기업들이 오히려 더 세금을 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실적을 근거로 산출한 납부세액을 보면 자산 1~50위 기업은 단 한 푼도 환류세를 물지 않게 되는 반면 400위권 이하 기업들은 3곳 중 1곳가량이 이 세금을 납부해야 할 것으로 파악됐다. 투자나 임금을 늘릴 여력이 없는 작은 기업에 부담이 쏠리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이렇게 물게 되는 세 부담은 전체 기업을 통틀어 약 8,613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덩치가 작은 기업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타격이다.

이에 대해 국회예산정책처는 "환류세제가 실효성도 낮고 그 자체로 이중과세의 가능성도 있어 법 체제를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국회가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걸고 나선 셈이다. 만약 환류세제를 담은 세법개정안이 이번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갈팡질팡할 경우 기업들은 당장 내년 투자계획을 짜기 난감한 처지에 몰릴 것으로 보인다.

②손 놓은 성역규제=노동 분야와 같이 정부가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聖域) 규제도 날로 강화되는 추세다. 현재 기업들은 사내하도급 문제를 대표적인 노동 규제로 인식하고 있다. 지난달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 활용은 불법 파견에 해당하며 이들 근로자는 현대차의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이 나온 이후 머리를 싸매는 기업인들이 크게 늘었다.

우리나라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조업은 무조건 파견을 금지하고 있는데 하나의 생산 라인 안에서 일하다 보면 사내하도급 근로자라도 원청의 지시를 받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 인력 운용의 효율성이 심각하게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280여개의 차 부품사가 회원인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 판결 이후 사업장별로 노조 차원에서 대규모 소송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감지된다"며 "사법부 탄원서와 대(對)정부 건의서 제출 등 기업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③뛰는 기업 기는 정부, 거북이 규제=정부의 '거북이 규제'가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발목을 잡는 사례도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휴대폰 제조업체에 물리는 '재활용 부과금'이 이에 해당하는 사례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올해 휴대폰 부문에서 약 21억원의 재활용 부과금이 납부해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재활용 부과금은 전기·전자제품 판매 사업자가 총 출고량의 일정 수준을 재활용 목적으로 회수하지 못했을 때 정부에 내야 하는 일종의 벌금이다. 예컨대 올해 100만대의 새 휴대폰을 팔았다면 10만대의 폐휴대폰을 수거해 다시 쓸 수 있는 부품을 골라내야 하는 식이다.

문제는 관련법이 휴대폰 시장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전자제품과 달리 휴대폰은 중고시장이 활성화돼 있어 회수율이 매우 낮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56%였던 휴대폰 재활용 목표 이행률이 올해 34%로 더 떨어질 것으로 분석한다. 자연히 재활용 부과금 규모는 매년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가 달아준 혹 하나를 매달고 전장에 나서는 셈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외국의 사례를 보면 휴대폰을 컴퓨터나 프린터 등과 하나의 제품군으로 묶어 휴대폰을 덜 걷으면 다른 품목을 더 거둬 실적을 맞출 수 있는 구조로 제도가 설계돼 있어 부담이 적다"며 "정부 규제가 날로 달라지는 산업의 특성을 따라잡지 못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④정책조정 실패, 제각각 규제=정부 안에서 손발을 맞추지 못해 기업에 부담을 떠안기는 경우도 있다. 현대차가 생산하고 있는 '싼타페 2.0 디젤 2WD AT'의 사례를 보자. 이 차는 현재 연비가 자동차 등록증과 차량 유리창에 붙는 라벨에 각각 다르게 표시된다.

같은 차에 서로 다른 2개의 연비가 표시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은 자동차 등록증 제원표는 국토교통부의 '자동차 관리법'에 의해 규제를 받는 반면 라벨 연비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소관이기 때문이다.

해당 차종은 산업부의 연비 조사에서는 적합 판정을 받았으나 국토부가 지난해 처음 실시한 연비 자기인증 적합 조사에서는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국토부가 리콜 권한에 이어 연비 검증까지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해당 부처와 업계가 '갑을 관계'로 전락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김주한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나 동남아 등 후발국들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다"며 "세계적 흐름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실정을 함께 감안한 여건 개선으로 기업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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