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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사태」해결의 전제/유장희 이대 국제대학원장(송현칼럼)

기아자동차 부도사태를 놓고 정부, 금융기관, 업계가 사태해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꽤 잘나가던 기업이 왜 이렇게 삽시간에 부도위기에까지 몰렸는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요인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요즘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들인데 다만 기아의 경우 이것이 동시에 터졌다는 것이 특징이다.제2금융권의 계속된 자금회수, 경기침체로 인한 자동차 내수불황, 인수 합병(M&A) 관련 시중의 악성루머, 기아그룹 내 계열사들의 부실경영, 그리고 노사갈등의 심화 등등이 거의 동시에 일어남으로써 최고경영층에 어떻게 손을 쓸 겨를조차 주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특히 기아 계열사의 경영난이 불러일으킨 그룹 재정능력의 취약성에다 최근 모그룹으로의 합병설 등 악성루머가 증폭되어 제2금융권으로 하여금 대출금을 계속 회수하도록 만든 금융계의 분위기가 기아의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대형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어찌해야 하는가. 창업과 퇴출이 자유스러운 시장경제하에서 원칙적으로는 M&A의 과정을 거쳐 새 주인을 찾든가 원매자가 없을 때는 폐업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간 12조원의 매출규모에 4만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38개의 계열사를 움직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국민차 생산권까지 따낸 국제적인 기업을 도산시킨다는 것은 아무리 시장경제의 원리가 맞는다 해도 국가경제적 입장에서 볼 때 현답이 될 수 없다. 선진국 자동차업계에서도 외부적 요인에 의해 제법 장래성있는 업체가 위기에 처한 일이 여러번 있었다. 70년대말 미국의 크라이슬러 회사가 자금난 때문에 문을 닫을 뻔한 때가 있었다. 이때 미국 조야에서는 두 개의 상반된 견해가 맞서 있었다. 한편에서는 GM이나 포드에 이를 흡수시킴으로써 대량실업을 방지하고 점진적인 경영 합리화를 모색토록 하면 된다고 주장했고 다른 편에서는 크라이슬러의 퇴장은 미국 자동차산업을 GM과 포드 양사로 복점시켜 그렇지 않아도 일본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판에 자동차 산업 전반이 앞으로 퇴화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많은 논란 끝에 크라이슬러 자체의 획기적인 자구노력·경영혁신을 전제로 미국정부는 79년 12월 드디어 15억달러에 이르는 동사의 신규사채 발행에 대한 정부보증안을 의회에 상정, 통과시켰다. 당시 카터 대통령도 어려운 결단을 내렸지만 빌 밀러라는 재무장관의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이 돋보였다. 74년말 일본의 마쓰다 자동차의 경우도, 그리고 작년 이탈리아 알리탈리아 항공사의 경우도 비슷하다. 피나는 자구노력에다 주거래은행과 정부의 민첩한 대응지원이 효과를 나타내 경영의 완전정상화를 이룩해낸 사례가 있다. 대형기업이 존망의 기로에 섰을 때 정부로서 취할 수 있는 입장은 세가지다. 그냥 놔두고 가만히 있거나, 금융기관에 넌지시 어떤 신호를 주거나, 아니면 미국·일본·이탈리아의 경우처럼 기업살리기에 적극 나서는 것이다. 이중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는 문제업체의 국민경제 내에서의 중요성 및 장래성, 리스크 분산방법의 유무, 그리고 정부의 리더십 정도 등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물론 세계무역기구(WTO)시대에 정부의 직접보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WTO의 보조금 금지규정을 피해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러한 조치의 대전제는 기아 자체의 뼈를 깎는 대개혁이다. 크라이슬러의 경우, 아이아코카 회장이 취임하여 전대미문의 대수술을 단행했다. 35명이나 되는 부사장 중 33명을 해임했고 8천5백명의 근로자를 해고했다. 유럽의 3개 자동차 회사, 남미의 4개 자회사, 그리고 호주의 생산시설을 처분했다. 회장 자신의 연봉은 단돈 1달러로 묶었다. 결국 해결방식은 자명하다. 기아그룹이 스스로 많은 모순을 단시일 내에 척결하고 그 노력이 적절하다고 판단될 때 정부가 정책적 대응을 신속히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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