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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ㆍ4분기에만 은행이 거둬들인 당기순이익은 5조5,000억원에 달했다. 막대한 이익을 실현하면서 연말에는 의도적으로 대손준비금의 규모를 늘리면서까지 한해 순이익을 10조원 선으로 맞추기도 했다. 화려한 추억은 잠시였다. 올해 2ㆍ4분기까지 은행은 5조5,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지만 3ㆍ4분기부터는 순익의 규모가 가파르게 꺾이고 있다. 3ㆍ4분기 실적을 가장 먼저 발표한 하나금융의 경우 당기순이익이 당초 시장의 예상치보다 300억원가량 적은 2,339억원에 그쳤다. 4ㆍ4분기 이후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은행들은 일제히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감량경영이나 내실 다지기 등을 내년의 경영화두로도 제시하고 동시에 감봉, 의무휴가 사용 등을 통해 실적악화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은행, 어닝쇼크 수준 실적될까=지난 19일 서울 소공동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협의회에서 시중은행장들은 "기준금리 인하로 순이자마진(NIM)이 감소하는 등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또 "기준금리 인하로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담이 경감되겠지만 경기부진이 지속됨에 따라 대출총량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금리인하가 대출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다 보니 3ㆍ4분기 은행의 실적에 대한 전망도 어둡다. '어닝쇼크(예상보다 저조한 실적)'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자산 성장세 둔화와 함께 예상치 못한 웅진 사태가 터졌고 부실자산 역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게 원인이다. 당장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법정관리로 인해 금융권이 쌓아야 할 대손충당금은 1조원에 이른다. 순이익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적발표를 했거나 발표를 앞두고 있는 은행들의 전망도 좋지 않다. 하나금융은 시장의 기대치를 밑돈 2,339억원의 당기순이익에 그쳤고 신한금융은 6,000억원을 밑돌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금융(4,100억원), KB금융(5,100억)도 15% 이상 순익이 줄어들 것으로 증권업계는 추산한다. 은행권의 3ㆍ4분기 당기순이익도 당초보다 적은 2조4,000억원을 밑돌 가능성이 높다.
은행권은 그래도 3ㆍ4분기는 선방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문제는 4ㆍ4분기 이후라는 얘기다. 대출 증가가 더디고 금리인하와 수수료 조정 등으로 인해 이익을 낼 여력은 더 줄고 있는 게 크다. 여기에다 실물경기 침체로 부실자산도 증가하고 있어 순이익은 더욱 떨어질 것으로 은행권은 보고 있다. 4ㆍ4분기 국내 은행의 당기순이익이 2조원을 밑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3ㆍ4분기까지 약 8조원의 순이익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4ㆍ4분기 순이익이 2조원을 밑돌면 올해 전체 이익은 10조원을 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은행권, 일제히 비상경영체제 돌입=4ㆍ4분기 이후의 상황이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한 은행들은 일제히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NIM의 지속적인 하락, 국제금융시장 불안 등 대내외적인 요인들로 영업환경이 갈수록 안 좋아지면서 보수경영으로 방향을 굳히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은 내년의 경영전략도 부실화 위험이 커지면서 리스크 관리와 내실 다지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다.
시중은행 가운데 가계대출 규모가 가장 큰 국민은행은 신규 가계대출 심사기준을 강화하는 등 가계 부문 건전성 제고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우리은행은 '감량경영'과 '건전경영'을 내년 화두로 제시했다. 신한은행도 성장보다는 내실 다지기와 리스크 관리에 역점을 두기로 했다. 이원호 신한은행 전략기획담당 부행장은 "가계와 기업대출 연체율 관리에 철저히 나서 자산 건전성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할 것"이라며 "신중하게 내실을 다지면서 동시에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감봉ㆍ의무휴가 등 비상카드도 하나씩 꺼내 들고 있다. 농협금융지주의 경우 7개 계열사 경영진의 임금을 8월부터 12월까지 10% 삭감한다. KB국민은행 등 은행권은 급여를 줄이되 휴가를 늘리는 방안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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