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시장 예상치의 두 배를 넘어서는 돈다발을 풀기로 하자 국내 주식시장에도 훈풍이 불었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전날 대비 0.79%(15.27포인트) 상승한 1,936.09포인트로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가 1,930선을 넘은 것은 지난해 12월26일 이후 처음이다. 외국인이 최근 10거래일 동안 가장 큰 규모인 1,012억원을 순매수하며 지수를 끌어올렸다. 반면 기관은 963억원, 개인은 1,113억원을 내다 팔았다.
ECB의 이번 조치는 투자심리 회복에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최근 원자재와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로 인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다소 완화되면서 외국계 자금이 다시 유입될 것으로 예상했다. 김윤서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ECB가 채택할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선택됐다"며 "글로벌 위험자산 선호 현상이 강화되면서 외국인 수급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이코노미스트는 "유럽계 자금이 한국경제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만큼 유입된다면 40조원 수준의 돈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월간 2조원 규모로 미국 통화정책 정상화의 부담을 일부 덜어줄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ECB의 양적완화 정책이 장기적으로 실물경제 회복으로 이어진다면 유럽 수출 비중이 높거나 유럽에 현지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실적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임노중 아이엠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ECB의 양적완화가 유로존 경기회복을 촉진해 소비심리가 살아나면 정보기술(IT), 자동차 업종의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의 대EU 수출은 514억달러로 전체 수출에서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오태동 LIG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도 "주요 기업 중 유럽 매출 비중이 높은 기아차(000270)(25%), 삼성전자(005930)(23%), 현대차(005380)(15%), LG전자(066570)(12%)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남룡 삼성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유럽 의존도가 높은 조선·정유·건설플랜트가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이고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유동성 확대와 유럽 경기 회복에 따른 중국 수출 증가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LG디스플레이·자동차·아모레퍼시픽(090430)·CJ CGV(079160) 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아직까지 대형주들의 실적 부담과 저유가, 그리스 총선이라는 대내외 불안요소가 지속되고 있어 코스피가 추세적 상승세로 돌아서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임 팀장은 "유럽계 자금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유입되려면 경기와 기업실적이 먼저 긍정적으로 돌아서야 한다"며 "ECB가 3월부터 돈을 풀더라도 1차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인 미국과 독일의 시장이 먼저 움직인 후에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증시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날 코스피는 장 초반 20포인트 이상 오르며 단숨에 1,940선을 회복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폭이 꺾였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ECB 발표 후 1.53% 올랐고 영국 FTSE100지수(1.02%), 독일 DAX30지수(1.32%), 프랑스 CAC40지수(1.52%)도 크게 상승한 것과는 차이가 난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날 실적을 발표한 기아차의 영업이익이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대형주들의 실적부진에 대한 우려가 ECB 효과를 소멸시켰다"고 분석했다.
실제 대형주의 실적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면서 연초부터 강세를 이어오고 있는 코스닥시장은 이날도 유가증권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폭으로 올랐다. 코스닥지수는 이날 1.88%(10.89%) 오른 589.31포인트를 기록했다. 이는 종가 기준으로 지난 2008년 6월30일(590.19포인트) 이후 약 6년 7개월 만의 최고치다. 임 팀장은 "국내 기업들의 실적부진이 이어지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지수인 코스피가 아닌 코스닥으로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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