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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에서 반도체 장비업체를 운영하는 C모 사장은 설을 앞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자재 구입비 결제일이 이달 말로 예정돼 있는데다 설을 맞아 직원들에게 조금이나마 상여금을 주기 위해서는 이달 안으로 10억원의 운전자금을 마련해야 되기 때문이다. C사장은 “은행 대출은 금리를 감당할 여력이 없어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보증기관에 얘기를 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자금 수요가 몰리는 설을 앞두고 중소기업들이 자금마련을 위해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인해 판매량 자체가 급감한 데다 은행 대출조차 쉽지 않아 돈줄이 마른 중소기업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담보가 있어 은행대출을 받을 수 있는 업체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한 쌍용자동차의 협력업체들의 경우 당장 직원들의 임금 지급조차 감당하기 힘든 실정이다. 경기도 평택의 한 쌍용자동차의 협력업체는 이달 말까지 직원 급여 등 총 20억원의 자금이 필요하지만 구할 길이 없어 막막한 상황이다. 쌍용자동차에서 받은 1억5,000만원 짜리 어음이라도 할인하기 위해 은행을 찾지만 번번히 거절을 당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쌍용차가 연초 5,000대 가량으로 생산계획을 잡아놔 이에 맞춰 원자재를 대량으로 사놓는 바람에 이 달 말에 자재비를 결제해야 된다”며 “대출을 알아보고 있지만 시중 은행에서 쌍용차 협력업체에 대출을 해줄 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설을 앞둔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은 중소기업중앙회가 531개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알 수 있다. 조사 결과 중소기업 10개중 7개(69.0%) 업체가 자금사정이 곤란하다고 응답해 최근 5년 동안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들은 자금난의 원인으로 매출감소(68.4%)를 가장 많이 꼽았으며 이어 판매대금 회수지연(57.8%), 원자재가격 상승(48.5%), 금융권 대출곤란(38.4%) 등을 지적했다. 또 이번 설에 업체당 평균 2억1,600만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며, 이중 1억2,500만원을 확보해 자금확보율이 지난해(72.9%)보다 훨씬 낮은 57.8%에 머물렀다. 이같이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급증하자 중소기업청 등 관련기관들도 자금난 해소에 팔을 걷어 부쳤다. 홍석우 중소기업청장은 15일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열린 금융지원위원회에서 윤용로 기업은행장과 이종휘 우리은행장 등 금융기관장들에게 설자금 공급을 차질없이 진행해달라고 특별히 당부했다. 홍 청장은 “은행이 중소기업에 대한 설자금 공급 계획을 발표했지만 일반창구에서는 이를 잘 모르거나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중소기업이 설자금을 이용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특별상담코너를 만들고 대출조건을 낮추는 등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했다. 중소기업청은 또 전체 정책자금의 28%에 해당하는 1조2,000억원을 다음달까지 집중 배정해 지원할 계획이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중소기업 설 자금 지원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1,000억원 규모의 기업어음(CP)을 발행할 예정이다. 중진공 관계자는 “그동안 3~10년 만기 공모채권만을 발행해왔는데 올해는 설을 앞두고 중소기업의 자금수요가 폭주해 연리 2.75%에 3개월 만기 조건으로 CP를 발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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