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에 도랑 친다'는 속담이 있다. 가뭄에 바닥을 정비해 물길을 낸다는 뜻으로 사전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전혀 다른 의미로도 사용된다. 아무 보람도 없는 헛된 일을 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인다는 의미. 같은 말이지만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 셈이다.
농경사회에서 수로 관리는 일 년 농사를 결정짓는 핵심이자 가뭄과 홍수로부터 농작물을 지켜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책이다. 물이 흐르지 않을 때 정비하는 것이 적은 노력으로도 훨씬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가 힘겨운 이들에게는 그저 불필요한 노력쯤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 시대를 넘어 지구촌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중소기업은 어떤 모습일까? 가물에 도랑 치듯 위기를 기회로 삼아 투자에 힘쓰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생존 그 자체에 만족하는 기업들도 있다.
미리미리 준비를 해 두면 설비투자의 효과나 인재확보의 용이성은 물론이고 인지도 상승을 위한 홍보 효과도 극대화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불황 시 투자는 그래서 더 주목받는다. 평소 물이 닿지 않아 불모지와 다름없던 대지를 황금 들판으로 변모시키는 계기로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세업체들의 난립으로 모두 투자에 고개를 돌릴 때, 메마른 강바닥을 뒤집어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한 이들처럼 말이다.
비계구조물 해체공사와 파일항타 등 지반개량 공사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도원토건은 불황일수록 성장을 거듭해온 기업이다. 안전시공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장비와 자재, 인력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은 덕분이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안전사고 등의 위험성은 증가하기 마련. 공사비 절감을 위해 부실자재가 사용되는 경우가 늘기 때문이다.
가설용 자재와 장비를 임대해 사용하는 경쟁사들과 달리 도원토건은 부실자재의 반입을 막기 위해 자체 보유하고 있는 강재만도 1만 톤에 달할 정도. 항타장비 역시 5대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지난 18년 동안 단 한차례의 안전사고도 발생하지 않은 이 회사는 매년 기록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기계식 덕트를 제작·시공하는 효성이엔지도 마찬가지. 건설경기 침체로 경쟁업체들이 투자에 주춤할 때 고가의 자동화시스템을 도입한 이 회사는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은 물론 균일한 품질경쟁력을 무기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수작업에 의존해 생산된 덕트들은 균일한 품질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 이는 결국 현장에서 덕트를 조립할 때 누기 발생과 같은 불량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효성이엔지는 전문 공조업체의 주문이 쇄도하며 나 홀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안광석 서울경제비즈니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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