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가스공사와 장기운송 계약을 맺은 액화천연가스(LNG)선의 미래 운임채권을 유동화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공기업이 업황악화로 고전 중인 국내 대표선사의 백기사로 나선 셈인데 이 방안이 실현되면 현대상선은 3,000억원에 가까운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어 회사채 신속인수제에 이어 또 하나의 중요한 자금줄을 확보하게 된다.
14일 금융당국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회사채 신속인수제에 참여한 현대상선은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구계획 방안 가운데 하나로 내년 상반기까지 3,000억원 규모의 자산담보부대출(ABL)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가스공사와 총 7척의 LNG선 장기운송 계약을 맺고 중동 및 동남아 지역 생산국으로부터 LNG를 실어 나르고 있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운임을 유동화해 금융권에서 담보대출을 받겠다는 것이다.
현대상선은 신속인수제와 유상증자 성공으로 내년 초까지 화급한 유동성 위기는 없지만 재무구조 개선 차원에서 이를 추진한다.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 등 채권단 역시 현대상선이 이 같은 방안을 공식 요청하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가스공사와 운송계약을 맺은 LNG선은 현금흐름이 안정적인 배"라며 "현대상선의 자구노력을 전제로 대출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스공사가 현대상선을 운영사로 지정한 LNG선은 모두 20년 이상 장기계약으로 묶여 있다. 그만큼 현금창출 능력이 안정적이고 꾸준하다. 보통 공사는 LNG선을 한번 띄울 때 선사에 중동은 50억원, 동남아는 20억원 안팎의 운임을 지급한다. 1년에 12회 정도 운항하는 점을 감안하면 연간 최대 600억원의 현금이 창출된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운항 중인 LNG선 3대의 운임을 3년만 유동화해 ABL을 받는다면 3,000억원은 쉽게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운임을 실제 지불하는 가스공사가 매출채권 유동화에 동의해줄지 여부가 관건이다.
공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운임 유동화를 허용해달라는 현대상선의 요청을 거절한 바 있다. 현대상선이 보유한 LNG선은 대개 선박금융으로 제작돼 돈을 빌려준 국내외 금융기관(대주단)들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현대상선이 받는 운임에서 대출 원리금을 정기적으로 회수한다.
하지만 운임을 유동화하면 디폴트 사유로 간주해 일시에 원리금을 빼앗아갈 수 있다. 안정적인 LNG 공급이 최우선인 공사 입장에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그러나 최근 해운업계가 동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국적선사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공사도 무조건 부정적일 수만은 없어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는 대신 현대상선 측에 ▦대주단이 자산유동화 통보시 디폴트 사유로 인정하지 말 것 ▦벙커C유 주유비∙선원급여 등 선박운용비 등은 담보 대상에서 제외할 것 등을 포함한 전제조건을 충족할 경우 운임의 ABL을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공사 관계자는 "LNG의 안정적 수송만 전제된다면 자산유동화에 동의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가스공사도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만큼 내년 상반기 중 현대상선의 유동성 확보방안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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