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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재즈는 대중음악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재즈는 대중음악이 아니다. 재즈는 통속성과 상투성에 저항하는 고급 음악이다. 통속문학과 본격문학(혹은 고급문학)이 있듯, 음악에도 그 우열이 있다. 재즈는 클래식과 마찬가지로 통속성을 거부하는 ‘정신의 엘리티즘’에 뿌리내리고 있다. 상투성과 싸운다는 면에서 재즈는 가장 진보적이며 열린 음악이다. 재즈 뮤지션들은 새로운 어법의 창조에 누구보다 열정적이며, 타 장르의 음악에 언제나 관대하다. 마음대로 즉흥 연주를 한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정신의 새로움으로 항상 충만하고자 한다는 뜻에서 재즈는 이 시대에 가장 자유로운 음악이다. 재즈 어법을 능란하게 구사하더라도 정신의 상투성에 함몰된 뮤지션은 더 이상 재즈 뮤지션이 아니다. 그러므로 재즈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재즈 스피릿’이다. 한국에서 재즈 뮤지션의 이름표를 달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한 ‘재즈 스피릿’을 가진 뮤지션은 그리 많지 않다. 대중들은 ‘쉽고 듣기 좋은 음악이면 그만이지 않나’라고 항변할 지 모르겠지만, 사실 ‘쉽고 듣기 좋다’는 기준만큼 모호한 것도 없다. 팬시 시집과 킬링 타임용 소설은 누구에겐 쉽고 좋은 글이겠지만 누구에겐 유치한 글의 무덤에 불과하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재즈 뮤지션들은 팝 음악보다 좀 더 고급한 표현력과 정교한 문법을 즐기고 싶어 한다. 그러니 재즈가 학구적이고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재즈 화성과 리듬은 음악적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고 난해하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에서건 재즈 레퍼토리가 대중적 성공을 거두기란 극히 어렵다. 그래서 재즈 뮤지션들은 자발적 ‘청빈’을 택한다. 그들은 음악적 자부심과 경제적 대가를 기꺼이 맞바꾼다. 세계적 성공을 거둔 재즈 스타 케니 지와 노라 존스의 음악도 따지고 보면 사실 메인스트림 재즈가 아니다. 케니 지의 음악은 팝에 가까운 ‘스무드 재즈’의 일종이며 노라 존스의 음악도 재즈라기 보다 블루스 혹은 컨트리 음악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약간의 재즈적 느낌을 얹어 고급 포장을 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재즈가 쉽고 편한 음악이다’라고 단정해 버리면 오산이다. 재즈가 이 시대 문화의 주요 아이콘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해외 유명 재즈 뮤지션들의 내한공연이 줄을 잇고, 곳곳에서 재즈 페스티벌이 대규모로 열리고, 재즈 이미지를 차용한 마케팅도 넘쳐난다. 이렇듯 사방은 재즈의 봄을 알리고 있는데, 여전히 한국의 재즈뮤지션들은 ‘청빈’의 삶 속에 있다. 이 건 어떤 의미에서 ‘마이너리티 음악’인 재즈의 숙명이기도 하다. 재즈가 대중화되는 것은 고무적이다. 시민들의 문화교양을 넓히는데 재즈만한 컨텐츠도 없다. 하지만 재즈가 있는 그대로의 음악이 아니라 표피적 이미지로 소비되거나, 문화적 허영을 과시하는 천박한 기호로 남용돼선 안될 것이다. 다시 한번 찾아온 재즈 붐이 90년대 그 것처럼 허망한 거품이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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