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일본을 찾은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현 총리)에게 한 마디 덕담으로 호감을 샀다. "그동안 포수 역할을 하셨으니 이제는 감독이 되시라"는 인사였다. 박 장관의 덕담에 신기라도 깃들었는지 이후 노다 재무상은 총리에 올랐다. 노다 총리는 일본 정부의 고질적인 만성적자 문제를 풀기 위해 증세론을 꺼내들었다. 해법은 정곡을 찔렀지만 세부담이 느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취임 초기 50%를 넘던 노다 총리의 지지율은 30% 초반까지 떨어졌다. 이를 바라보는 우리 관료들도 심란하다. 정부는 평소 충분히 세수를 확보해놓아야 경기가 식어갈 때 돈을 풀어 경제난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세금을 더 걷는다고 하면 여론의 역풍이 거세다. 마침 내년에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가 겹쳐 있어 표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정부로서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전망치로 잡았던 세수를 달성하기 힘들 수 있다. 그동안 국세청은 숨은 세원을 포착해 세수 목표치를 초과 달성해왔지만 글로벌 불황의 충격이 우리나라를 강타할 경우 초과 달성률은 현저히 떨어졌다. 일부 세목은 도리어 목표치를 크게 미달하기도 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여파로 미국발 금융위기가 우리 경제를 흔들었던 지난 2008~2009년이 그랬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국세 예ㆍ결산 오차율 추이' 분석에 따르면 2008년 당시 종합부동산세와 상속증여세는 예산안 목표치보다 각각 25.8%와 29.7%나 덜 걷혔고 증권거래세 징수실적도 무려 12.0% 미달했다. 우리나라 세금의 3대 축을 차지하는 소득세와 부가세의 징수실적도 각각 예산안을 4.4%, 0.5% 밑돌았다. 그나마 법인세가 7.9% 더 걷히고 관세가 21.8% 초과 징수된 덕분에 2008년의 전체 국세 초과 징수율은 마이너스를 겨우 벗어 1.1%로 턱걸이할 수 있었다. 2009년에는 국세 초과 징수율이 더 떨어져 0.3%에 그치기도 했다. 이는 2007년의 9.6%, 2010년의 4.3%에 비해 크게 못 미친 수준이다. 문제는 내년 상황이 2008년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미국의 부양에 힘입어 위기국면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번 위기는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다행히 주요국들이 유럽 재정위기의 해법을 상반기 중에 찾으면 경제의 불투명성은 사라지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유럽 국가들은 전반적으로 긴축을 할 수밖에 없다"며 "세계경기 둔화가 장기화될 경우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에도 상당한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이런 흐름을 볼 때 정부의 당초 예상보다 국세 징수실적이 장기간 미달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는 올 9월 말 새 중기재정계획(국가재정운용계획)을 내놓으면서 2011~2015년의 실질 경제성장률(GDP 기준)을 4% 중반으로 잡아 해당 기간의 국세수입 증가율이 평균 8.7%에 이를 것으로 낙관했다. 그런데 정부마저 최근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3.7%로 하향 조정한 상황이어서 세수차질 우려는 한층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세수 확충난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단순히 국세청이 세금을 쥐어짜는 임시방편으로는 근본적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근본적인 증세방안을 찾아야 하지만 이해관계가 다른 계층ㆍ집단 간 과세형평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어 이마저도 쉽지 않다. 정부가 이 같은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 세법 개정에 나선다고 해도 표심의 이탈을 우려한 여야의 눈치보기로 인해 국회의 문턱을 넘기 어렵다. 세출을 조절하기가 더 힘들다는 뜻이다. 올해 정부는 30조원대에 달하는 비과세감면제도 중 불요불급한 사안은 대대적으로 폐지ㆍ축소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용두사미에 그치고 말았다. 특히 감면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농어민 기자재 부가세 영세율 및 면세유 제도 등은 철폐는커녕 되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피해대책을 요구하는 이익집단의 목소리에 밀려 자칫 영구화될 위험에 처했다. 또 의제매입세액공제제도의 경우 중소상인의 높은 카드수수료율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으로 공제율을 슬금슬금 올리는 등 되레 비과세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 상황에서 근로자에 대한 비과세 감면을 건드릴 경우 상대적으로 형평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일각에서는 부가세처럼 상대적으로 조세저항이 작은 간접세율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가뜩이나 얼어붙은 내수를 위축시킬 수 있고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노다 총리도 소비세 인상을 추진하다가 지지율 하락 위기를 겪고 있는데 내년 선거를 치러야 할 여야가 부가세율 인상을 지지하겠느냐"며 "부가세율 인상은 차기 정부에서도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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