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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선 산업은행, 정부 지원업고 수익사업… 충돌

경제개발시대 선도적 금융기관 역할 빛바래… 2000년이후 금융지주사 변신… 사업확대… 적자나도 정부 손실보전에 '성과급잔치'도




개발독재시대 한강의 기적을 뒷받침했던 산업은행이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지난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과 1998년 5조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내면서 정체성 혼란과 존폐 논란에 휩싸였지만 이를 버텨냈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산은의 변신은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산은을 국책은행과 투자은행(IB)으로 나누겠다는 원칙에 따라 마련한 민영화 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사람이 태어나 죽듯 기업도 마찬가지다. 시장실패를 지원하기 위한 금융공기업은 민간 금융회사와 달리 시장원리가 아닌 정부 정책과 설립목적에 따라 생사가 갈린다. 산은의 과거와 현재, 바람직한 역할 재정립 방안, 그리고 우리가 벤치마킹할 만한 해외 금융공기업의 변화상을 살펴본다. 산은은 1954년 ‘중요 산업자금 공급’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산업은행법은 이를 위해 정부가 전액 출자하고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것은 물론 결손까지도 정부가 보전하도록 했다. 실제로 1998년 산은이 5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내자 정부가 2조원 이상의 증자를 단행했다. ◇개발연대 경제성장의 견인차=산은은 설립 직후 전쟁 복구와 경제부흥정책에 따라 재정자금을 전력ㆍ석탄 등 기간산업의 시설기반 확충에 중점 지원했다. 순수 정책기관이었다. 1960~1970년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개발금융기관으로 변신, 한국경제의 자립과 공업화ㆍ수출주도형 중화학공업 체제 구축에 힘을 보탰다. 1980년대 정부가 안정성장 기조를 강조하면서 경제체질 개선과 산업구조조정을 지원하는 장기설비금융기관의 역할을 맡았다. 1990년 이후에는 기술집약산업과 미래지향적 산업, 기업의 국제화를 지원하는 종합기업금융기관으로 성장을 추구해왔다. ◇WTO 출범으로 정체성 위기=1995년 WTO 체제가 출범하면서 특정산업에 대한 저리의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정부는 국책금융기관 성격의 명문규정을 삭제했다. 1997년에는 산은의 자금지원 대상에서 ‘중요산업’ 범위 규정을 삭제했다.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산은을 내세워 ▦기업금융 확대 ▦외화자금 조달 ▦기업구조조정 추진 등 시장실패를 보완하는 정책금융을 수행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산은은 대규모 적자를 내고 정부로부터 수혈(증자)을 받았다. ◇정부 보증 받아 수익사업, 민간 금융기관과 충돌=외환위기를 겪고 기업들의 체질이 개선된 후 산은은 민간 금융기관과 정면 충돌하게 됐다. 기업들의 시설자금 수요가 급감하면서 산은은 시중은행들도 공급이 가능한 운영자금 대출을 확대했다. 산은의 시설자금 대출은 1997년 39조4,000억원에서 2004년 21조2,000억원으로 18조원(46.2%) 줄어드는 반면 운영자금 대출은 7조7,000억원에서 9조4,000억원으로 1조7,000억원(22.1%) 늘어났다. 운영자금 조달목적으로 발행되는 회사채 투자까지 포함하면 총 운영자금 규모는 13조원에서 32조원으로 18조7,000억원(139%) 증가한 셈이다. 정책금융 지원이 단절되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던 산은은 2000년 금융지주회사로 방향을 정했다. 대우증권과 옛 서울투자신탁운용을 자회사로 편입하고 순수 민간영역인 프라이빗 뱅킹(PB), 방카슈랑스 등 수익성 사업을 확대했다. 또 증권회사에 비해 자금조달이 쉬운데다 회사채 발행기업과 여신거래 실적 등과 같은 유리한 조건을 내세워 회사채 발행에도 적극 참여했다. 대우증권을 포함한 주간사 업무 점유율은 40%를 넘어섰다. 산은법에 따라 정부의 출자와 지급보증ㆍ손실보전까지 받는 국책은행이 수익성 위주의 사업에 나서자 민간 금융회사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감사원도 설립취지가 퇴색한 산은에 대해 정부 정책과 관련된 투ㆍ융자에 특화된 금융기관으로 기능을 조정하도록 권고했다. 설립목적에 충실하고 수익성 위주의 업무영역을 확대하지 않도록 권고했다.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면서 적자를 흑자로=산은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수익성과 함께 자신의 잇속만 챙겼다. 정부는 2001년 한국전력공사 주식 4조2,259억원어치를 산은에 현물 출자했다. 한전의 발전자회사 민영화에 필요한 지급보증에 따라 산은의 BIS비율이 12.3%에서 9.8%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산은은 한전 지분율이 15%를 넘는다는 이유로 2001년 3,711억원, 2002년 9,315억원 등 4년 동안 무려 2조9,414억원의 평가이익을 당기순이익에 반영했다. 2002년에는 은행 영업에서 7,329억원의 적자가 났지만 한전 주식 평가이익 9,315억원에 힘입어 결산에서는 1,835억원 흑자로 뒤바뀌었다. 이를 근거로 2003년에 41억원, 2004년에 12억원 등 총 54억원의 성과급을 과다 지급했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산은은 옛 재정경제부의 2중대 역할과 고위 공무원들의 자리보전용으로 생존과 업무영역 확대가 가능했다”며 “정부의 일방적인 목표제시가 아닌 산은의 설립목적과 정체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논의를 거친 후 발전방안을 확정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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