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1987년 12월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취임한 직후 3년여 동안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경영 구상을 가다듬었다. 취임 3년 뒤 마침내 회사로 나온 이 회장이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비서실(현 미래전략실) 개혁이었다.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격인 비서실을 장악해야 제대로 된 신경영을 펼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이 회장은 비서실장 교체 3년 뒤인 1993년 6월 일명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시작으로 삼성 혁신의 드라이브를 걸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재용 부회장의 향후 경영 방향 또한 미래전략실의 움직임에서 가장 먼저 포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재계 안팎의 분석이다.
이건희 회장 취임 당시 비서실은 가신(家臣) 그룹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고 현재 미전실은 각 분야에서 오랜 기간 경험을 쌓아온 전문가 그룹에 더 가깝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JY의 색채가 미전실에 덧입혀질 것으로 삼성 안팎에서는 보고 있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지난해부터 경영을 총괄하면서 한화와의 빅딜 같은 선 굵은 인수합병(M&A)에 나서는 등 한눈에 들어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아직 신성장 먹거리 등에서는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면이 있다"며 "여기서 성과를 내는 게 미전실의 숙제"라고 설명했다.
물론 당장 현 시점에서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의 사업보고서(2014년 12월 말 기준)에 따르면 회사 소속 미전실 임원은 총 45명으로 정기 인사가 있기 전인 지난해 9월 기준 43명과 거의 차이가 없다. 미전실 수장인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은 물론 김종중 사장이 이끄는 전략1팀과 부윤경 부사장이 이끄는 전략2팀의 임원들이 전원 유임됐고 경영진단팀과 기획팀·인사지원팀에서 각 1명씩 교체 인사가 있었던 게 눈에 띄는 정도다. 아직은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고 있다는 얘기다. 본래 미전실은 각 계열사 임원이 각자의 소속을 유지한 채 '헤쳐 모여' 식으로 운영되던 조직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삼성전자 밑으로 바뀌었다.
더욱이 올 들어 일부 인물이 각기 계열사로 복귀하면서 미전실이 슬림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지만 삼성측은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공식 편제상 미전실은 아니지만 삼성 금융계열사를 총괄하는 삼성 금융일류화추진팀의 움직임도 관심거리다. 이 부회장이 플래그십 스마트폰인 갤럭시S6에 '삼성 페이'를 탑재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데다 최근 중국과 북미 등지에서 글로벌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과 잇달아 회동하고 있어 앞으로 더 큰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금융팀은 임영빈 삼성증권 부사장과 장석훈 삼성화재 전무 등이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출근하며 현안을 보고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의 향후 경영 방향을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키워드로 학맥(學脈)을 꼽는 시각도 있다. 향후 사업 재편 및 추가 구조조정 등에서 이런 인연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상무는 이 부회장의 하버드대 동문이다. 지난해 11월 전격적으로 이뤄진 '삼성·한화 빅딜'은 동문 관계인 두 오너 3세의 합작품이라는 점에서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또한 일본 게이오대를 중심으로 이뤄진 인맥도 폭넓다. 오랜 세월 막역한 친구로 지내는 동갑내기 조현준 효성 사장이 바로 게이오 인맥이며 임성욱 세원그룹 회장, 최성원 광동제약 사장,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등도 같은 학교 동문이다. 이 밖에 이해진 NHN 이사회 의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등은 서울대 동문으로 분류되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조현상 효성 부사장과는 같은 초·중·고등학교를 나온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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