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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TV를 바꾸며 떠오른 斷想

金仁淑(소설가) 얼마전, 텔레비젼이 고장났다. 꼬박 10년 동안 정붙여왔던 텔레비젼이다. 가전제품에 10년이란 세월이 만만한 세월은 아닐 터이다. 화면조종장치의 뚜껑은 떨어져나가고 리모콘도 사라져 꼭 수작동을 해야만 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외장 따위야 무슨 상관인가. 내 집의 텔레비젼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화면상태가 너무 나빠서 바꿔야겠다』고 충고했지만 그래도 빨간색이 파란색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었고, 한국말이 외국말로 바뀌어 들릴 지경인 것도 아니었다. 살림을 사는 사람에게 멀쩡한 것을 내다버리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오죽하면「잘 버리는 사람」이 살림을 깔끔하게 하는 사람이란 말이 있을 정도겠는가. 10년째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장롱정리를 할때마다 또다시 잘 개켜 한켠에 얹어놓는 옷이 몇벌인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멀쩡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멀쩡하지 않다고 할 수도 없는 텔레비젼을 내다버린다는 게 도대체 쉬운 일일 리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허구헌날 하게 되는 말이『저놈의 테레비는 고장도 안 나나』였다. 빨간색이 파란색으로 나오는 건 아니라지만 벌써부터 안경을 끼고 있는 아이의 시력에 저 대충인 빨간색의 화면이 좋을 리가 없는 것은 분명했다. 새 걸로 바꾸긴 바꿔야할텐데 저 놈의 텔레비젼은 고장도 안나나. 고사를 지내듯 치성드린 보람이 있었든지 어느날 저녁,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텔레비젼이 순식간에 깜깜먹통이 되어버렸다. 10년이 되었다고 애프터 서비스를 안해줄리야 없을테지만 한참 전에도 몇만원이나 되는 수선비를 들였던 경험도 있는 터라, 기회는 이 때다 싶었다. 신이 난 아이와 함께 할인매장에 가서 대형화면 텔레비젼들을 구경했다. 텔레비젼이라는 것이 종류에 따라서는 얼마나 고가품이 될 수도 있는 것인지를 그때서야 처음 알았다. 저가 기획품 텔레비전을 새로 들여놓던 날, 새 텔레비젼으로 본 첫 뉴스에서 IMF이후에도 재벌그룹들에서는 외제가전제품의 수입량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사는 사람이 없으면 파는 사람도 없을 터인데. 세상이 아무리 뒤집혀 있어도 잘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눈 깜짝 안 하는 모양이구나 싶었다. 몰랐던 사실은 아니지만, 새삼스레 씁쓸해지는 기분을 감출 수가 없던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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