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 주재로 열린 제1차 금융규제개혁 추진회의에서 나온 발언에 금융사 관계자들은 귀를 의심했다. 금융위가 "금융사의 가격·수수료·경영판단사항에 대한 금융 당국의 개입을 통제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민간 자율권을 확대하겠다는 당국의 변화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로부터 석 달 뒤인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는 앞서 방침을 뒤집는 발언이 나왔다.
임 위원장이 카드사 수수료 문제와 관련해 "수수료율 인하 요인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밝히고 중도상환수수료에 대해서는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한 것. 금융계에서는 결국 임 위원장마저 정치권 압박을 못 이기고 수수료 개입에 나선 것 아니냐며 반발이 커지고 있다.
15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사들은 임 위원장의 국감장 발언으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 중 카드사들은 앞서 카드론 금리를 최대 1%포인트가량 떨어뜨린다는 방침을 밝힌 상황에서 가맹점 수수료까지 인하하기에는 여력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카드사 관계자는 "2년 전 가맹점 수수료율을 업종별이 아닌 매출단위별로 바꾼데다 소액결제가 늘고 있어 관련 수입이 갈수록 줄고 있다"며 "카드론이나 연체이자 등으로 수익을 보전하는 상황에서 가맹점 수수료율까지 인하한다면 수익성이 지나치게 악화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카드 업계 관계자는 "앞서 금융 당국이 수수료 체계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수수료 인하 압박은 사실상 계속 있어왔다"며 "포퓰리즘이라는 내부 불만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압박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중도상환수수료와 관련해서는 금융 당국이 오히려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은행들은 이미 지난해 말 내부 시뮬레이션을 통해 중도상환수수료 인하시 발생할 대출상품 갈아타기 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웠다. 그러던 중 중도상환수수료 인하를 압박하던 최수현 금융감독원 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은행권에서는 이 문제가 후순위로 밀렸으며 6월 금융위의 '수수료 개입 불관여 방침' 발표 이후에는 사실상 업계 전체가 마음을 놓고 있던 상황이다. 당국의 일관되지 못한 정책 신호가 은행권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셈이다.
중도상환수수료를 당국 주도로 내리는 것 자체가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여신담당자는 "올 상반기 은행들의 중도상환수수료가 역대 최고라는 자료가 나왔지만 근저당 설정비나 법무사 비용 및 대출중개인수수료 등의 관련 비용도 역대 최고를 기록해 관련 이익은 오히려 줄었다"고 밝혔다. 또 현재 은행들 대부분은 중도상환수수료를 대출액의 1.5%가량 부과하고 있지만 3년을 기한으로 순차적으로 수수료율이 낮아지는 '슬라이딩' 방식 때문에 실제 각 가계가 부담하는 평균 수수료율은 0.4%에 불과하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금융 당국은 그러나 카드사 수수료의 경우 적격 비용 산출 과정에서 당국이 개입할 명분이 분명히 있으며 중도상환수수료 또한 수수료 합리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국 관계자는 "모든 은행이 획일적으로 중도상환수수료를 책정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으니 이를 조정하라는 것으로 수수료 인하 압박과 동일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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