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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지원책이 정신없이 쏟아지고 있다.
대통령부터 경제관료까지 연일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한편 관련 부처들도 앞다퉈 중기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흡사 개각을 앞두고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부처들이 충성 경쟁이라도 벌이는 듯하다.
그러나 과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고 했다. 대책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당면한 재정건전성 회복에 중기 지원책으로 투입되는 자금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중소기업을 살리려다 자칫 산업 경쟁구조 자체를 훼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경쟁력 회복을 위한 구조조정의 칼날은 무뎌질 대로 무뎌졌다.
물론 이달 말까지 관계부처 조율을 거쳐 최종 지원 방안이 나오겠지만 전문가들은 대통령부터 정부부처, 정치권까지 시간에 쫓겨 경쟁적으로 내놓는 정책들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허대식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분명 중소기업도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며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을 정부와 대기업이 파격적으로 키워주도록 중소기업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책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세제 등 인센티브. 현금결제에 대한 세제 혜택은 대기업 등 원청업체들의 현금결제 비중을 높여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을 원활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하청 중소기업 결제에 대한 세제 혜택은 지난 2008년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통해 현금성 결제(환어음ㆍ판매대금추심의뢰서ㆍ기업구매전용카드ㆍ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제도ㆍ구매론ㆍ네트워크론)의 경우 30일 이내에 결제할 경우 0.4%에서 0.5%로 세액공제율을 높였다. 2008년 12월 말까지였던 이 제도는 한차례 연장돼 올해 말 일몰 예정이었지만 친서민,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세제개편 원칙에 따라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빙그레) 회장 출신인 김호연 한나라당 의원은 중소기업에 대한 상속세 인하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세제 혜택은 세수 부족이라는 부작용을 안고 있다. 가뜩이나 감세정책으로 세수가 줄어든 상황에서 자칫 대기업 현금결제에 대한 세제 혜택은 법인세 축소에 이어 또 다른 대기업 감세 혜택이 될 수 있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금성 결제에 대한 세제 혜택은 어음제도 개선을 위한 것이지 일방적인 세제 지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문은 납품단가 개선이다. 정치권은 물론 공정거래위원회도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횡포를 이번 기회에 뿌리 뽑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다. 중소기업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세제ㆍ금융 지원보다 절실한 것이 판매가격 인상이기 때문이다.
정부 내에서는 납품단가 조정 협의 의무제 보완책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4월 도입된 납품단가 조정 협의 의무제가 중소기업이 사후에 당할 '불이익' 때문에 소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는 납품단가 조정 협의시 중소기업협회와 같은 '제3자 개입'이 가능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3자 조정권 도입이 자칫 중소기업 담합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아예 중소기업 협동화 사업에 대해서는 담합이 가능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납품가 연동제도 정부의 검토사항 중 하나다. 김동선 중기청장은 "중소기업의 익명성을 보장해주면서 납품단가를 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 방안을 놓고 관계부처 간에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납품단가 연동제, 또는 제3자를 통한 신고, 집단신고제 등 여러 가지 방안에 대해 장단점을 감안해 지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납품대금 지급의 법정기일을 단축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현행 60일에서 30~ 45일로 당겨 중소기업의 단기자금에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정지급일을 당길 경우 원청ㆍ하청 관계가 성립된 모든 업체들의 대금 지급이 앞당겨지는 만큼 자칫 2, 3차 중소기업의 자금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중기 지원정책은 이전 정부에도, 그 이전 정부에도 있었고 지금도 비슷한 틀"이라며 "기존 정책부터 철저히 집행해 정책신뢰를 쌓은 뒤 법적ㆍ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중소기업정책이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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