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곳이나 공기업은 느리고 보수적인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주인 없는 조직에 방만한 운영, 화수분 같이 마르지 않는 자금이 이들의 공통점으로 지적돼 왔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98년 몰아친 외환위기는 변화의 무풍지대에서 ‘철밥통’이라고 불렸던 공공기관에게도 개혁을 요구했다. 경영전문가인 저자는 강남의 노른자위 땅에 거대한 건물을 갖고 있는 알짜 정부 단체 무역협회가 지난 10년간 치룬 개혁의 과정을 꼼꼼이 되짚어보고 있다. 저자가 이 시점에서 공익적 조직의 혁신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이렇다. “세계의 대다수 정부가 표방하는 ‘작은 정부’가 한 나라의 산적한 사회적 도전과 문제를 말끔히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대신 그 역할을 맡아야 할 조직은 바로 새로운 비영리 사회부문이 될 것이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레서트 설러먼 교수는 ‘19세기가 민족국가의 시대’라면 오늘날은 ‘비영리 조직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비영리 조직이 성장은 이제 세계적인 대세가 됐다. 60년전 준 정부조직의 성격으로 설립, 가장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조직이었던 무역협회가 왜 혁신의 가시밭길을 걷게 됐을까. 그 시작은 대외무역법이 개정됐던 97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출입 승인 제도가 폐지되면서 회원사가 냈던 수입부담금이 끊어져 무역협회는 재정자립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수 없는 기로에 놓이게 됐다. 책은 무역협회가 갑작스러운 위기에 직면하게 되면서 생사와 성장의 문제를 풀어나간 혁신 과정의 기록이다. ‘혁신’ ‘개혁’은 보통 기업들이 내 거는 슬로건이지만 무역협회의 성공 사례가 기업의 그것과 다른 점은 변화하지 않을 것 같은 공익적 조직이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면서 안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이뤄낸 성과라는 것이다. 또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인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도 큰 차이점이라 하겠다. 저자는 무역협회의 경영혁신의 특성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정부나 관련 기관의 지시나 강제에 의해 시작한 타율적 혁신이 아니라 자발적이라는 것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동안 지속적으로 혁신을 해 왔다는 것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는 일에 최우선적 중점을 두었다는 점 ▦꾸준한 혁신을 통해 갈증과 대립의 노사관계가 상생의 국면으로 전환되는 쾌거를 이뤘다는 점. 전 직원에게 원가 개념을 도입하고, 핵심조직의 역량을 강화하고 고객을 위한 조직으로 거듭나는 등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은 일반 경영서적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론이다. 하지만 느리고 보수적인 무역협회는 이를 실천으로 옮겨 기존의 무역협회 사업 외에도 아셈타워 운영 등 새로운 사업을 개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이보다 더욱 값진 성과는 공익 이라는 공공의 의무와 기업의 정신인 수익의 조화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위기도 수차례 있었다. 가장 큰 위기는 인력조정. 96년부터 시작된 인력조정의 태풍은 부서장급 30명을 대상으로 시작, 매년 수십명씩 회사를 떠나게 만들었다. 책은 당시 법원과 노동위원회에 제기된 소송 21건 등 인력조정의 아픈 상흔들을 사례로 들어 당시 무역협회가 겪었던 아픔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책 마지막에는 당시 개혁의 선봉장이었던 김재철 전 무역협회장과의 인터뷰와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화요포럼 주제와 강사편람 등을 수록해 혁신을 추진하고 있는 공공기관의 이해를 도왔다. 저자는 책 후기에서 “무역협회 10년의 개혁과정은 완벽한 것도 종료된 것도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단호한 실험과 모색을 시도했다는 것”이라며 “혁신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두려움과 수동성을 떨쳐내고 조직에 대한 애정과 자율적인 열정으로 가득한 뜨거운 집단으로 성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T&G와 아이칸의 경영권 분쟁에 경제계가 떠들썩한 요즈음 공공조직의 성공적인 혁신을 강조하는 책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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